인생을 살아가며 광야를 몇 번이나 지나게 될까요?
젊어서는 입시나 취업을 앞두고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결혼을 바라보며 광야 길을 걷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나이 들면 자녀들을 향한 소망을 품어 다시 크고 작은 광야를 지나게 되지요.
‘~만 이루어지면’, ‘~만 해결 나면’이라며 마치 가나안 땅을 고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날을 꿈꾸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이라는 말로 시작해 미리 지침을 주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간 후 맘대로 움직이기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이 있다고 하나님은 삶의 우선순위를 말씀하고 계신거지요.

큰 돌에 율법을 새기라
신명기에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이 나옵니다. 가나안 중심부에 있는 이 두 산은 지형상 햇빛을 받아 밝은 그리심산과 그늘지고 어두운 에발산으로 나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먼저 큰 돌들을 세우고 그 돌에 모든 율법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하라(신명기 27장 8절)고 말씀하십니다. ‘돌에 기록하라’ 하신 것은 이 율법을 영원히 간직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늘진’ 산 에발산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 해석자에 따르면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지난날의 ‘불신과 교만’을 상기하라는 뜻으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이제 말씀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또 인간은 이 어두운 에발산 가운데 세운 율법을 보며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으라는 의미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율법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갈라디아서 3장 24절)이라 했는데 몽학 선생은 로마 시대에 어린 자녀들을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학업을 돕던 선생들로, 바른 행동을 지도하는 책임을 진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하며 우리의 행위를 인도합니다. 그러나 후에 예수의 믿음의 법 앞에서는 이 율법이 어린 자녀를 돕는 초등 학문으로 제한되는데, 이는 율법을 알아갈수록 죄를 깊이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나 ‘구원자가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데까지’라는 것입니다.

세겜을 찾아 번제와 화목제를
그 다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면 ‘찾아야 할 곳’이 있다고 지시합니다. 바로 ‘세겜’이란 곳인데, 그곳은 위의 두 산 사이에 있는 분지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왜 ‘세겜’에서 그러라고 말씀을 하신 걸까요?
여기는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고향을 떠나 정착했던 곳으로, 하나님이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 약속과 축복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토록 메마른 광야를 지나도록 요셉의 유골을 가져와 가나안에 들어가 세겜에 장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후에 가나안에서 임무를 마친 여호수아도 이곳에 백성을 모으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번 결단을 촉구하며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선포합니다.
이렇게 ‘세겜’은 하나님의 축복인 약속을 기억하며 찾아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를 만나주셨던 자리, 은혜와 사랑을 알게 하신 곳, 우리에게 앞날을 약속해 주셨던 것을 기억해 찾아야 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광야의 수고로움을 지나 이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부풀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난날의 불신과 교만한 마음으로 겪었던 어려운 시간을 잊지 말고 율법을 지키며 간직하라, 하나님을 만난 자리를 찾아 예배하며 즐거워하라고. 우리도 소망하는 것을 눈앞에 두었을 때, 가나안에 다다르면 새롭고 신기하고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고, 찾아야 할 곳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의 이 말씀은 모세가 유언과 같이 마지막 설교에서 당부한 내용입니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지내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백성들이 그곳에서 더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서해원
대광교회 담임목사. 전통적인 교회에 젊은 유학파 목회자로 부임한지 20년. 분명하고도 변함없이 말씀중심 목회로 세대를 아우르고 지역 사회 속에서 중견교회의 건강한 교회모델을 세워가는 목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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