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하면서 겪었던 가슴 아픈 경험 중, 지금도 잊히지 않은 일이 있다. 개척교회 시절, 너무나 착했던 한 젊은 여 집사님이 무릎 관절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이었다. 사랑하는 어린 남매와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하는 집사님의 절망과 설움, 어린 자녀들의 애처로운 울음, 젊은 남편의 슬퍼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그 집사님이 어릴 때 다리를 약간 다쳤는데 가난과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로 병원을 다니지 못하고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암으로 발전되어 몇 번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도 악성 세포를 완전히 해결
부활의 계절예수부활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신앙의 핵심인데도,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이들 중에도 이에 대해 갸우뚱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아직 복음서에 기록된 ‘빈 무덤’에 관한 말씀과 깊이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누가복음 24장 5~6절)사복음서에 각각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초월적 하나님을 좁은 상식의 틀 안에 가두어두고, ‘상식으로 이해 안 된다’고 떠들어댑니다.무덤을 찾아간 이들의 마음예수를 따르던 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창세기 12장 1~3절가라고 말씀하시다아브라함 이야기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이 자체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않아서지금 우리 시대는 탈기독교 탈교회의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분명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는 외부적 요인들이 있겠지만 더 큰 요인은 ‘교회 자체’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탈기독교 탈교회 현상에 대해 다른 무엇을 탓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소금과 빛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자기 반성의 질문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소금이 되려고, 빛이 되려고 애를
부모님의 기대대로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기도하던 중 주신 이사야 54장 2절과 3절 말씀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를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그리고 그 해 서울신학대학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특차 장학생 선발에 몰래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반대도 무릅쓴 채 담요 한 장 가지고 무작정 상경했습니
‘이웃’은 기독교의 믿음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 없는 ‘복음’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어느 신학자이자 윤리학자는 복음/‘말씀’이란 어쩔 수 없이 ‘사회롭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은 ‘사회’의 됨됨이를 밝히고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지키는 사람’하나님이 만드신 아담과 하와. 이 두 사람 사이에서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습니다. 두 아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을 때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일로 가인은 화가 나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맙니다. 여호와께서 가인
손자의 걱정“할아버지가 저렇게 신앙에 열심인데, 만약 하나님이 없으면 할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해?”손자가 자기 엄마한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긴가 민가 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같이 기도하고 성경 읽고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수없이 얘기한 아이이지만, 중학교 1학년이니 신앙에 대해 회의나 의심을 할 나이가 된거지요. 할아버지로서는 이 아이가 평생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믿음을 떠난 자녀들최근에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과 자주 만날
한센병 치료 전문가, 이종욱 박사지난 8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17주년을 맞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파트너로 직결되어 일하는 이 기관은, 우리의 선진화된 의술을 필요로 하는 곳곳에 봉사하며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한국의 선진 방역이 알려지며, 각종 의료봉사가 세계로 더 확장됨을 보는 시점입니다.이 재단이 출범한 데에는 우리가 꼭 기억해 둘 만한 분이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WHO 사무총장에 취임했던 이종욱 박사입니다. 그는 성 라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다 한
우리 역시 모른다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시청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연출됩니다. 가령, 서로 만나야만 하는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는 상황, 잡히면 죽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장면 등 흔히 말하는 ‘운명의 장난’을 많이 보게 됩니다.우리가 이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흔히 말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들의 상황과 감정을 알고 있으니, 마음 졸이고 안타깝고 때로는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지만, 다 아는 우리 입장에서는 아니까
나뭇가지로 짓는 새들의 집새들이 나무 위에 집을 짓는 광경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 작은 입으로 어디선가 나뭇가지 하나씩을 물고와서는 차곡차곡 집을 만들어 갑니다.그런데 놀랍게도 새들은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에 부지런히 집을 짓는다는 겁니다. 바람이 잦아든 후에 하면 더 수월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것은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랍니다.역경의 비바람이 불어올 때누구나 인생이라는 집을 짓습니다. 인생의 집은 평생 동안 지어가기에,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역경의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무너지지 않
주기도문의 ‘일용할’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중 많은 번역본들이 “일용할”이라고 번역해온 ‘에피우시오스()’라는 헬라어에 대해 기독교 초기의 몇몇 저술가들은 이 말이 ‘오늘’을 가리킨다고 해석했습니다. 영어성경이나 우리말 성경이 이 말을 오늘이라고 번역한 것이 바로 이런 견해를 따른 것입니다.또 다른 교부들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가리킨다고 해석했습니다. 5세기 초 신학자인 히에로니무스(제롬)는 자신에게 히브리어로 쓴 히브리복음이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에
줄탁동시의 순간‘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 속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려고 쪼아대면(啐), 동시에 어미 닭은 바깥에서 부리로 알 껍질을 쪼아줌(啄)으로써 병아리가 온전한 생명으로 탄생하는 장면을 묘사한 말입니다.요한복음 20장 11~18절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줄탁동시’ 순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마리아는 새벽, 주님의 무덤을 찾아가 울고 있었습니다(11절). 그런데 무덤이 비어있습니다. 마리아는 세 번에 걸쳐(2, 13, 15절) 누군가 주님을 옮겼으니 꼭 되찾아야겠다고 합니다. 무덤 속
청년들과 보낸 시간우리 마음의 감정이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만큼 변덕스러운 것은 없다. 그런데 이 변덕스러운 생각, 감정은 인생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몇 주 전 청년들로 구성된 단기 선교팀과 함께 네팔에 다녀왔다. 청년들과 공항에서 몇 시간을 함께 보내고, 선교 현장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요즘 청년들의 생각들을 많이 알게 되며 여러 생각이 오갔다.단기 선교팀 일원으로 함께 가기로 계획하면서부터 단기 선교 인솔자가 있으니 말과 행동에 조심하고 절대로 간섭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기도했었다. 그러나 막상 젊은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주다바나바와 바울은 이방 땅의 첫 교회인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되어 선교 여정을 시작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으로 보내진 바나바는 바울을 불러들여 함께 사역을 감당하였고, 교회는 흥왕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께서 이 둘을 선교사로 파송하고자 하셨다(사도행전 13장 2~3절). 안디옥 교회는 이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을 보냈다. 한글 성경이 ‘보내니라’라고 번역한 헬라어 단어는 성경에서 주로 감옥에서 풀려날 때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안디옥 교회가 이 두 사람을 그동안의 직무에서 완전히 자유
소문이 더 흉흉한 때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삶을 살지만, 특별히 요즘 공감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전쟁과 기근, 전염병이 복합적 어려움으로 더해지며 ‘세상’ ‘마지막 때’를 느끼는 요즘이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질문합니다.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땅과 물질, 힘과 유명해짐….그럼, 공공의 적이 되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세상에 평화가 올까요?영화처럼 나치, 옛 소련으로의 복귀 야심, 북한, 국수주의로 형태만 달리할 뿐 세상에 언제나 존재하는 적군을 어떻게 무찔러야 하나요?소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들려오는 뉴스만 들으
다시 겨울로 향하는 시각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광야 같은 한해를 돌아보기 좋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이 갈마드는 인생길을 걷는 동안 우리의 영원한 중심이신 주님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붙들고 계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방다리 위를 걷는 것처럼 삶이 위태롭다 느낄 때마다 제가 떠올리는 시편 구절이 있습니다.“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시편 37
드보라의 리더십하나님께서 가나안 왕 야빈의 학대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드보라를 세우십니다. 13명의 사사 중 유일한 여성인 드보라는 딸, 아내, 어머니, 며느리 같은 여성 역할에다가 선지자와 사사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입니다. 그녀는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서 사사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드보라는 ‘엄마형 리더십’을 구사했습니다. 그 안에는 여성적 리더십, 유연한 리더십, 수평적 리더십, 관계 지향적 리더십, 소통 중심의 리더십, 격려와 배려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독서의 계절 가을입니다. 금년 가을은 예전에 보던 그 맑은 하늘, 산과 하늘의 또렷한 경계를 계속 보게 되어서 감개무량합니다. 코로나가 만든 지구의 일시적 모습일지요.지금껏 읽었던 기독 서적이나 글 중에서 마음 깊이 남아 있는 글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길을 잃을 때마다 몇 번씩 찾아 읽곤 해 왔던 내용입니다. 이들은 잘못된 신앙 자세를 가다듬게 했고, 가슴을 뜨겁게 했고,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의 치유를 위해 애쓸 때 이미 성취된 주님의 승리를 무기 삼게 했으며, 주님을 기뻐하는 조용한 시간을 겨우나마 가질 수 있게도 했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을 사셨는데, 공적인 활동은 3년이었습니다. 이 짧은 3년의 시간 안에 예수님은 당신이 하셔야 할 일들을 다 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동력은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 뜻은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그 십자가 구원의 방향에 맞춰 일하셨습니다.가치관 따라 목적과 수단 달라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은 빛의 자녀들은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는 방향이 달라져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나를 향
주인공만큼이나 흡입력 있는 조연들의 감칠맛 연기로 이끌어가는 영화나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으로 세계의 눈을 집중케 했던 영화 의 배우 윤여정 씨를 가장 인상 깊게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그것뿐이겠습니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주인공 이병헌, 김태리의 활약이 크지만, 조연급 36명의 개성 있는 연기가 드라마를 성공시켰습니다.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의 허준호도 그렇습니다. 허준호는 드라마든 영화든 악역이나 중요한 조연이 전문분야입니다. 그의 조연은 보조가 아니라 팽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