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그래도, 이타주의

우리는 돈을 지불해 상품을 구매할 때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려고 시간을 들여 쇼핑몰을 비교하고, 소위 말하는 ‘가성비’를 따져 제품을 선택한다.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 혹은 효율의 정도’를 따지며 똑똑하게 소비하려는 건 그만큼 내 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지갑을 열었을 때도 우리는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뜨거운 마음으로 휴대폰을 열어 ARS 번호를 눌러 일회성 기부를 하고, 낯선 땅의 어린이들이 행한 노동에 공정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공정무역 커피를 따뜻한 마음으로 선택해 마실 때 이 기부가 정말 이웃을 돕는 최선의 방법일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하는 말이다.

이타주의에 효율성을 생각해 보라고?
세계적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온정으로 베푸는 우리의 기존 기부행위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내에만도 100만 개 가까운 자선단체가 있고, 거기에 모이는 기부금이 연간 2,000억 달러(약 225조 9,000억 원)에 달한다. 종교단체로 가는 헌금도 1,000억 달러(약 112조 9,500억 원)나 된다. 그러나 자선단체 중에는 노골적인 사기집단도 있을 뿐 아니라, 기부금이 정말로 목표한 선을 달성하고 있는지 잠재 기부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운영되는 자선단체는 드물다고 주장한다.
성금 대부분은 자선단체가 광고하는 후원대상(사람, 동물, 산림 등)의 이미지를 접한 정서적 반응의 결과물로, 싱어는 이 점을 바꾸고자 했다. 이타주의가 발현될 때 정서적 반응이 아닌 이성적으로 계산되어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그가 주창한 이른바 ‘효율적 이타주의’는 “세상을 개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성과 실증을 통해 모색하고 실천하는 철학이자 사회운동”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가령, 시각장애인에게 맹인견을 제공한다고 하자. 이 때 맹인견 한 마리를 훈련시키고 그 맹인견과 제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을 교육하는 데에는 약 40,000달러가 소요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 트라코마(trachoma : 감염 질환의 하나)로 시력을 잃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는 20~50달러가 소요된다. 40,000달러라는 돈은 미국의 시각장애인 한 명에게 맹인견을 제공할 수도 있고, 사백 명에서 이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앞을 보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선택인지는 분명하다는 게 싱어의 주장이다.

선의 최대화로 얻는 성취감과 행복
자기희생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게 효율적 이타주의의 핵심이다. 그래서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은 어느 구호활동 또는 구호단체가 가장 효율적인지 조사하고 논의해 이성적으로 선택해 기부한다. 부유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더 보탬이 되기 위해 능력과 적성이 허락하는 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커리어를 선택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선의 최대화’다.
지금 당신이 이미 여러 곳에 기부를 하고 있거나 앞으로 기부할 계획이 있다면 이들의 제안에 귀기울여보면 어떨까. 깊은 생각 없이 감정에 따라 기부처를 정하고 큰 관심 없이 계좌에서 자동으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내가 지금 기부하고 있는 곳이 적실하게 돈을 집행하고 있는지 혹은 앞으로 내가 기부할 곳이 지혜롭고 선하게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일에 최적화된 곳인지 꼼꼼히 체크해보자.
그러나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이 말하는 ‘선의 최대화’라는 이상에 대해서는 윤리적 고민과 선택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앞서 든 예처럼 한 명의 미국인 시각장애인보다 개발도상국의 시력을 잃은 환자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지, 과연 내 것을 내놓는 것 없이 주변이 행복한 세상을 꿈꿀 수 있는지, 선을 위해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커리어를 선택하는 것으로 자기 욕망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말이다.
진지한 고민과 더불어 세상을 개선하는 효율적 방법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웃을 돕는 최선의 방식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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