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1.4 금 20:38
 
> 뉴스 > 특집/기획 > special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크리스마스 씰, 1932년 셔우드 홀 선교사에 의해 처음 시작
특집-우리들의 '크리스마스'를 찾아서
[227호] 2018년 12월 01일 (토) 임영국 @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크리스마스 씰을 학교에서 구입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크리스마 씰이 지금도 매년 다른 디자인으로 발행되어 아직도 결핵퇴치사업에 힘쓰고 있다. 크리스마스 씰을 시작한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 그의 회고록을 통해 도전을 받은 의사 임영국 원장에게 그 숨은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에 의해 크리스마스 씰 모금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셔우드 홀이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된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만인을 결핵퇴치 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1932년 이후 1940년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된 후 셔우드 홀은 일제에 의해 누명을 쓰고 강제로 추방됨에 따라 크리스마스 씰 발행 역시 중단되었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씰 이야기
크리스마스 씰은 캐나다의 의료선교사인 셔우드 홀에 의해 처음 발행되었다. 셔우드 홀은 서울에서 선교사 대회가 열리던 때 발행 허가를 정부로부터 받기 위해 일본인 관리 오다 야스마츠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씰에 대해 협조적이었으며, 최선을 다해 발행 허가를 얻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셔우드 홀이 최초로 도안한 씰을 보여주자 질색을 하며 단 한마디로 “안 된다”고 거절했다. ‘거북선 도안’이었기 때문이다. 셔우드 홀은 씰 사업이 성공하려면 조선 민중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조선 민중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거북선이 국가의 적인 결핵을 향해 화염을 내뿜도록 대포를 배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디자인이었다. 당시 일본은 계속되는 전쟁에서 승리를 이어가던 상황에서 거북선에 패한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는 싫었을 것이다. 일본인 관리는 “일본과 조선 쌍방이 만족할 수 있는 도안을 새로 만들어 오라”고 했다.
셔우드 홀은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전보다 드라마틱한 면은 떨어지지만 역사적 의미가 큰 서울의 남대문으로 결정했다. 남대문은 조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결핵을 방어하는 성루가 된다는 점을 의도에 담았다. 그렇게 첫 번째 씰의 도안과 씰 캠페인에 대한 허가가 났다.

만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 무렵의 일반 조선인들은 결핵을 ‘부끄러운 병’으로 여기고 있었다. 악귀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이 운명적으로 받는 벌이라고 보았다. 결핵 크리스마스 씰을 사기보다는 오히려 나뭇가지에 울긋불긋한 헝겊을 매달아 귀신을 달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형벌을 받아 병에 걸린 사람들인데 어째서 그들의 운명을 방해하려는 것인가?”하고 오히려 반문하곤 했다.
1932년 가을, 당시 결핵요양원이 위치해 있던 황해도 도지사의 도움을 받아 해주 시청 공회당에 시민회가 소집됐다. 여기서 크리스마스 씰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도지사는 명예회장, 셔우드 홀은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조선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은 12월 3일에 발행되었다. 크리스마스 씰 위원회의 보급 선봉대들은 12월 초에 전국 각지로 씰 보급을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마지막 팀은 조선의 명절인 음력 정월 초하루가 지난 2월 하순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알고 보니 조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때보다 양력 2월 구정에 더 사용해 그 때 더 많이 팔렸다.
크리스마스 씰 보급에는 무엇보다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적은 수의 크리스마스 씰 위원회 인원만으로는 역부족이던 홍보와 보급 사업이 그들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심지어 결핵요양원의 환자들까지 나서서 힘을 보탰다. 환자들 가운데 글을 쓸 줄 아는 이들이 각지의 친지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크리스마스 씰의 홍보 및 보급을 홍보하고 기독교인 환자들은 기도회를 조직해 이 운동이 성공하도록 기도했다.
크리스마스 씰 보급 운동이 확산되면서 각처의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격려의 편지를 보내왔다.
“결핵 씰 운동에 유용하게 써주시기 바라면서 여기에 수표를 동봉합니다. 우리는 그 훌륭한 계획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성공을 빕니다.”
“나는 국제 사망률 도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이 지적한 조선인 사망률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조선의 결핵 사망률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점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동요했습니다. 우리 학교의 여학생 한 사람이 이번 주에 결핵으로 사망했고 한 명은 지금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 사람들은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씰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엉뚱한 편지도 몇 장 왔다.
“저는 당신이 결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광고를 보고 씰을 샀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이 씰을 정성껏 가슴에 붙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약은 나의 심한 기침을 조금도 낫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돈을 돌려주시기를 청구합니다.”
“여러 사람들 입에 자자한 그 훌륭한 크리스마스 씰 약을 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값은 얼마라도 지불하겠습니다.”

첫 해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은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경비를 다 제하고도 170달러의 이익금이 남았다.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조선의료선교사협회(Korea Medical Missionary Association)는 셔우드 홀이 계속 위원회 회장으로 일한다면 이 사업을 맡겠다고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의 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 씰 사업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들이 주관하는 운동이 되었고,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기 위해 포스터 크기의 씰 복사품, 크리스마스 카드, 달력, 우편엽서, 퍼즐 장난감 등도 제작되었고, 이후 인도선교사로 23년을 더 섬긴 셔우드 홀 선교사는 거기에서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여 인도 결핵퇴치에 앞장을 섰다.

결핵환자들을 치료하거나 돌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시대에 이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은 뻗은 셔우드 홀 선교사의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러한 헌신을 통하여 전파되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임영국
충남 아산 미래한국병원 원장인 필자는 좋은씨앗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기독서적 출판인으로서 셔우드 홀 선교사의 회고록을 재출판하였다.

ⓒ 아름다운동행(http://www.iwithjesu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표지 보기
아들을 위한 책읽기 DNA
발걸음과 바라봄
“용서, 어렵지만 가야 하는 길”
존재에게 건네는 ‘살리는 말’
나는, 너는 왜 그렇게 말할까?
삶의 교정? 말부터 바꾸자
기부금 케이크 및 지역이웃 위한 ...
발달장애인 위한 ‘느리고 펀(Fu...
알림판
에볼라 바이러스가 할퀴고 지나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