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참 기기묘묘하고 신비로운 단어이다. 좋기는 하지만 왠지 안개처럼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말이다. 더구나 목회자인 나에게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이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어렵게 다가온다.

오대산에서 만난 사람
며칠 전 오대산 월정사 주변 전나무 숲길을 걷게 되었다. 많은 단풍객들이 가을의 정취와 자연의 생명력에 흠뻑 취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멋있는 경관을 보며 감격하다가도 좀 쑥스럽게 여겨지는 순간은 등산복이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한 사람들과 마주칠 때이다.
이날도 많은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확 띄는 여성분이 있었다. 멀리서 봐도 머리에 특이한 두건까지 두른.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두건이 멋으로 두른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없는 것을 감추기 위함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아무리 화장을 했어도 얼굴의 병색을 감출 수 없었고 누구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꽤 오랫동안 항암치료와 병원생활을 하다가 맘먹고 바람 쐬러 나온 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의 표정이었다. 행복한 얼굴, 순수한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 나를 놀라게 했다. 오대산 단풍여행을 위해 그녀가 했을 법한 ‘마음의 뒤척임’과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이 여행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망설이던 순간들을 상상하는 내 마음으로는 설명 못 할 해맑은 삶의 표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 자신인양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두 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허리를 우아하게 세우고 많은 인파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천천히 걷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면 아픈 자신을 저토록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까? 단풍의 절정을 이룬 오대산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 순간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들려준 메시지
“진정한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BTS, 방탄소년단이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유니세프(UNICEF, 유엔아동기금)와 함께 모든 폭력으로부터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End Violence”(폭력방지) 프로그램의 파트너로서 한 연설 중 한 대목이다.
방탄소년단이 외치는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는 메시지에 그동안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던, 방탕한 문화로 뒤덮인 지구촌이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BTS, 방탄소년단은 ‘Bulletproof boys’(총알을 막는 소년들)라는 뜻으로, 10대와 20대 젊은이들에게 총알같이 날아오는 해로운 사회적 억압과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스스로 자신을 아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사랑의 의지를 담고 있다. BTS의 또 다른 확장된 의미는 ‘Beyond The Scene’(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청춘)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LOVE MYSELF”(자신을 사랑하라)를 외치고 노래한다. 어느 기자가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LOVE MYSELF”(자신을 사랑하라)를 모두 모두 더 잘해서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힌다.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목회자인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계명인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고 실현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기다린 내일도 어느새 눈을 떠보면
어제의 이름이 돼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어제가 되어 내 등 뒤에 서있네
삶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포기하지 마
알잖아 너무 멀어지진 마 Tomorrow
(BTS, ‘Tomorrow’ 중에서)


“삶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 가사가 “내 삶은 사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Love Myself’로 살아내는 것”이라 들린다.

앞의 오대산 전나무 숲을 내려오며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 두 명의 소년도 만났다. 그들은 뒤틀린 발로 위태로운 걸음을 옮겼고, 두 팔 역시 자유롭지 않았지만 벌어진 입 한쪽으로는 침을 흘리면서도 하늘을 형형히 쳐다보는 표정, 그 표정은 보통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황홀한 표정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바람을 맘껏 들이키며 사랑스런 자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정말 멋진 표정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언제 저런 표정을 지어봤지? 우리는 언제 저런 표정을 지어봤을까.

유경선
강서구 등촌동의 좋은샘교회 담임목사이며, 기독교감리회 강서동지방회 감리사 및 아름다운동행 법인이사로 지역의 연합과 격조 있는 기독교문화운동을 도구로 복음선교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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