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자족,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처음에는 직장만 구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일자리가 생기고 나니 차가 있어야 할 것 같고 차가 생기니 이제는 주말에 많이 못 놀러 다니는 게 속상해요.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 사진 보면 진짜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예전보다 형편이 나아진 건 분명한데 전 왜 여전히 행복하지 않지요?”
특별한 누군가의 고백이 아니라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고백이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정도면 행복하고 만족합니다’란 고백이 듣기 힘든 요즘, 강원도 원주 명봉산 기슭 낡은 흙집에서 잡초로 식사를 하며 살아가는 고진하 시인·권포근 잡초 요리연구가(원주한살림교회) 부부를 만나러 갔다. 자급자족, 자발적 가난, 불편을 즐기며 살아가는, ‘한국의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이라 불리기도 하는 부부의 삶을 통해 ‘자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불편당에서 불편을 즐기다
‘불편당’(不便堂)이란 이름을 지어준 집은 말 그대로 낡은 시골집. 누가 보면 안 다듬고, 안 가꾼 집 같다고 하겠지만 구석구석 다 이유 있는 ‘공간’이었다. 때가 되면 제비가 둥지를 틀고 길고양이가 밥을 자연스레 먹고 간다.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온 풀씨들은 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부부는 “제법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시골에 들어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 살면서 나름의 사치를 누리고 삽니다. 작은 텃밭에 씨를 심어 가꾸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봄이면 각종 꽃을 뜯어다 화전을 부쳐 먹는 사치도 누리지요. 그러나 자본의 마법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웃들은 그렇게 사는 삶을 힘겨워합니다.”
자족과 자발적 가난의 삶을 배우기 위해 멀리서 불편당을 찾아오는 이들은 늘 부부에게 묻는다. ‘이런 낡은 집에서 어떻게 불편을 견디고 살 수 있냐’고.
“저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불편도 불행도 즐길 줄 알면 우리 삶이 더 풍요로워질 거라고요. 처마 밑에 든 제비집이나 마당과 텃밭에 자라는 잡초들을 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문명의 현란함에 취해 잃어버린 ‘경외’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큰 존재를 우러러봄이 아닙니까. ‘경외가 사라지면 우주는 장터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생명을 화폐라는 교환가치로만 환원되는 곳이 바로 장터이며, 우리 삶의 소중한 절대가치가 상대가치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흔한 것이 귀하다
부부가 10여 년 전 귀촌귀농하여 살며 깨달은 것은 진짜 귀한 것은 ‘흔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흔한 것은 귀하지 않아서 흔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주위에 풍성하게 널려 있는 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고 착각하며 산다는 것.
“현대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물들어 흔치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애쓰고요. 그러나 정말 우리를 살리는 것들은 모두 ‘흔한 것’입니다. 햇빛, 공기, 바람, 우리 부부가 잘 먹는 잡초까지. 잡초에는 약이 되는 좋은 성분이 많은데 흔하니까, 공짜로 주어지니까 쳐다보지 않지요. 시골생활 하면서 저희 몸이 그 잡초 때문에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몰라요.”

내가 씨 뿌려 기르지 않은, 하늘이 기르는 잡초는 때가 있다. 제철에만 먹을 수 있다. 오늘날 이 첨단문명의 미덕으로 사람들은 ‘느림’을 운위하지만, 느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철에 따라 나는 식물을 먹기만 해도 느림의 미덕을 배울 수 있다.
- 고진하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중에서


흔한 것이 귀한 것이라는 깨달음부터가 자족의 시작인 것.

방향이 맞는가 질문하라
“자족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한 선택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 지장 없는데도 끝없는 결핍 속에 살아가는 것은 소위 말해 천민자본주의의 덫에 치여 사는 것이지요. 마치 소가 코뚜레에 꿰인 것처럼 일종의 노예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욕망하라는 데로 욕망하며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전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모두를 사실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질문하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고진하 시인은 이어 이렇게 말한다.
“가난하게 살겠다 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 안에서 말입니다. 예수의 삶을 푯대로 삼는다고 하면 ‘나는 이전보다 더 가난하고 절약하고 살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는 ‘최소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비는 둥지를 틀고 거기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까고 키운 후 떠날 때가 되면 자기가 지은 집에 대해 전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가진 소유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합니다. 나누는 삶, 덜어내는 삶, 성경에서 거듭 말하는 ‘빼기’의 삶에 관심가져야 합니다.”

숱한 동물과 식물들이 내 곁에 머물다 떠나는 것처럼 나와 내 식구들 역시 잠깐 머물다 떠날 뿐, 보금자리에 대한 집착은 우리의 삶을 고해로 만든다. 우리가 제비들처럼 둥지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순간마다 자족과 행복을 노래할 수 있으리라.

자족의 삶은 가치를 깨닫는 것, 그 깨달음에 따라 방향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방향을 맞추었다면 어색하고 불편해도 살아내는 것. 각자의 방식대로 말이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욕망의 실체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고, 그것에 맞추어 살며 고백해야 한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저술과 강연을 통해 그 이야기를 풀어내고, 낡은 한옥을 수리하고 텃밭을 가꾸고 잡초요리를 연구하고 살아가겠지요. 떡집 할머니 손길에 저를 내맡긴 인절미처럼 살 겁니다. 콩고물에 굴리면 콩인절미로, 팥고물에 굴리면 팥인절미로, 누가 뭐라 해도 하늘이 굴리는 대로, 하나님이 굴리시는 대로 살 거예요.”

흔한 ‘잡초’를 만난다, 배운다
잡초 연구 통해 건강 먹거리 소개


잡초요리에 관심을 두고 식물도감을 끼고 산으로, 들로 먹을 수 있는 잡초를 찾아 나선 권포근 잡초요리연구가.
“유럽에서는 허브라고 부르며 이미 그 효능에 대한 연구도, 요리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야생풀을 뭉뚱그려 ‘잡초’라 부르며 무시하지요. 그래서 그 효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잡초요리는 명실 공히 세계적 트렌드입니다. 사실 우리 선조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잡초요리를 즐겼습니다.”
남편 고진하 시인과 함께 잡초를 뜯어 비빔밥을 해먹고 각 잡초의 특성과 효능을 연구하며 레시피를 공유한 권씨는 이미 <잡초 레시피>, <잡초 치유밥상>이란 책도 출간해 매스컴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가 먹는 잡초는 대부분 흔한 것들입니다. 집 주위나 텃밭 가까이 있는 것들로 질경이, 개망초, 토끼풀, 민들레, 쇠비름, 환삼덩굴 등 구하기 쉬운 것이지요. 아무리 뜯어 먹어도 잡초들은 계속 돋아납니다. 이처럼 생명력이 강하고, 영양가도 살아있고, 약성도 뛰어납니다.”
예를 들어 오메가3가 가장 많은 쇠비름은 심혈관계 질환에 좋고, 환삼덩굴은 고혈압에 탁월한 효능이 있으며, 여름에 논밭 가에 무성히 자라는 왕고들빼기는 소화기능에 아주 좋다고. 봄에 나는 곰보배추나 꽃다지는 폐 질환에, 토끼풀이나 까마중은 피부질환, 길가에 자라는 질경이는 이뇨작용을 돕는다.
“여러 잡초로 요리를 해 밥상에 올리면, 우리 집 밥상은 곧 ‘약상’이 됩니다. 들판의 잡초는 하나님이 키우십니다. 우리가 잡초에 눈만 뜰 수 있다면, 우리 몸과 영혼이 더 강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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