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르다, 알아가다 / 장애인·노숙인·어린이 목회자들의 고백

사역이 아니라 ‘앎’
지난 7월 18일, 세 명의 목회자가 대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대구 마가교회에서 장애인 목회를 마치고 은퇴한 서일웅 목사(75), 부산 물만골교회를 담임하며 노숙인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는 문상식 목사(53), 경북 경주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고 함께 가꾸어가는 송경호 목사(46).
서로 처음 만난 자리였으며, 살아온 세월도 다르고, 공부한 배경도 모두 다른 그들이 불과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금세 오래 만난 친구들처럼 친숙해졌다. 세 목회자들이 공감한 한 단어 ‘알아가다’ 때문이었다. 재밌게도 세 목회자는 모두 같은 고백을 했다.
말하자면 그 고백이란 이런 것이었다.
“나의 구원은 그들 즉 장애인, 노숙인, 아이들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기서 이들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 ‘안다’는 의미는 자신이 목회하는 이들이 결국 ‘구원을 가져다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 말은 곧 그들 즉 장애인, 노숙인, 어린이들이야말로 자신의 구원자 ‘그리스도(?)’였다는 깨달음이었다.
세 목회자의 ‘앎’이 가져다준 그 신비로운 깨달음의 비밀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서일웅 목사 ‘장애인을 알아가다’
‘알아가다’는 말이 참 좋다. 하나님께서 나를 ‘안다’고 할 때 그 말은 히브리어 ‘야다’이다. 이 말은 ‘내가 너를 낳았다’는 의미이며, 부부가 서로를 안다는 의미이다. 내게 ‘행복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알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앎’은 ‘이해’의 폭과 범위를 확장시켜준다. 그래서 누가 실수를 해도 이해하며, 미워할 수밖에 없는 짓을 하더라도 이해한다. 이 말은 ‘용서’라는 개념과도 비슷하다.
처음 장애인 사역자가 되어서 나는 장애인들은 내가 돌봐줘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30년도 더 지났다. 대구의 어느 가난한 동네에서 척추장애인인 아가씨가 있었는데 동네 건달이 겁탈을 해 임신을 하게 되었다. 척추장애인이 임신을 하면 출산도 중절도 어렵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는데 난 병문안 가서 ‘힘내라’는 등 예의 긍정적 설교를 하고는 돌아오는 식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전화를 받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오늘 밤을 못 넘길 것 같으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유난히 눈이 맑고 얼굴이 고운 이 아이의 손을 잡고, 어쩌면 임종을 맡기는 기도를 하는데, 그 고운 아이가 맑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사님, 살고 싶어요.”
아이는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눈망울을 보는 순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기도도 못하고 손만 잡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고민했다. 부모도, 의사도, 주변 사람들도, 심지어 목사인 나도 포기해버린 그 상황에서 아이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 절망이 어린 눈망울 속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 그것은 ‘그래, 그리스도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고백이며 ‘예수’는 역사이다. 우리에게 남은 건 고백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다 포기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의 기도는 나사로를 살렸으며, 오늘도 예수의 그 기도는 살아 역사한다. 그때 내 고백에는 그리스도가 없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죽음 앞에 선 그 아이가 나를 구한 구세주 곧 ‘그리스도’였다. 그러니 나의 구원은 장애인으로부터 온 셈이었다.
그 후 나는 모든 게 바뀌어버렸다. 그게 나의 ‘야다’였다. 그러므로 ‘야다’라는 말 속에는 긍정도 있고 부정도 있으며, 희망도 있고 절망이 있다. 기쁨도 있고 상처도 있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다. 그렇게 바뀐 뒤 내가 하는 설교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비장애인이었다.

문상식 목사 ‘노숙인을 알아가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실 때 그들의 문제는 율법을 단지 형식적인 법으로만 알 뿐 그 법의 진심 곧 사랑을 알지 못하는 데 있었다. 그 결과 율법으로 폭력으로 행사했다.
노숙인 사역을 하고 나서 받은 첫 번째 충격은 노숙인들에게 목사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 때로는 ‘목사새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마음에 들면 ‘목사님’이라고 부르다가 한순간 생각이 바뀌면 ‘목사새끼’라고 욕했다. 진정한 관계의 형성은 앎을 통해 만들어진다. 관계 형성 없는 목회는 목회가 아니다. 관계를 형성하지 않은 채 하는 설교는 때로 폭력이 된다. 그런데 나는 관계를 형성하기보다 성경이나 다른 책을 읽고, 원고 쓰는 데 집중했다. 목회가 앎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은 순간 나는 책부터 덮었다.
처음에는 노숙인 사역을 하면서 그들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꼭 6개월 만에 환멸에 빠졌다. 그들은 내가 베푼 호의에 감사하기는커녕 식판을 엎고 개밥을 준다고 불평하고 나의 멱살을 잡았다. 내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 같지 않은 그들을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생겼다.
그때 하나님이 나에게 “저 사람을 너보다 낫게 여기지 않으면 그건 목회가 아니다”라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는 걸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체 그들이 나보다 나은 게 무엇이냐고 따졌다. 나의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줄 몰랐다.
그리고 내가 노숙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를 위해 그들이 부름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즉, 하나님께서는 허상을 진리인 양 붙들고 있는 나를 실제상황에 던져서 나의 허상을 보게 하신 셈이었다. 그래서 노숙인 형제들에게 고백했다.
“여러분이 저의 스승입니다.”

송경호 목사 ‘아이들을 알아가다’
나는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누구여야 할지 깨달았다.
가령 한 아이가 내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목사님, 저는 끝까지 갈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목사님은 끝까지 간다고 했으니 내가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오면 목사님은 거기 있어주실 거죠.”
그래서 나는 우리 센터의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의 이탈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탈한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우리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느냐는 것이다. 아쉽게도 많은 교회들은 이탈을 방지하려고만 하지 돌아왔을 때 지켜주지는 않는다.
중학교 2학년인 아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는데, 이혼하는 부모를 본 그는 결혼에 대한 꿈을 접어버렸고, 모든 권위에 반항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나를 때릴 수 없어요. 선생님은 물론이고 부모님도 안 돼요. 그런데 목사님은 나를 때려도 돼요. 왜냐하면 목사남이 나를 때릴 땐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 말은 내가 자신을 알아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멋진 설교를 하는 목사여서가 아니라 내가 자기편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사로서 나는 아이들의 삶의 자리를 함께 지키며, 그곳에서 아이들의 눈물과 아픔을 이해함으로써 비가 오면 함께 비를 맞아주는 아저씨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내게 아이들을 알아가는 일이란 곧 이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야단치지 못한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역’이라는 표현도 쓰고 싶지 않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목사로서 매력적인 ‘메신저’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정작 이 메신저의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목양하는 목사가 될 수 있었던 셈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내 존재 가치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게 해준 게 아이들이었다.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이 나를 만나서 복을 받았다고 하지만 틀린 말이다. 나야말로 아이들을 만나서 복을 받았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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