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가 싶다. 어쩌자고 꽃들은 이다지도 지천으로 피어나는지. 세상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래서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자꾸만 배어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 없다. 영춘화, 산수유, 매화, 살구, 앵두, 사과, 목련,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제비꽃까지 눈인사를 나누기에도 분주하다. 게다가 달빛 아래서 바라보는 배꽃이라니.

하얀 배꽃 밝은 달빛, 은하수는 한밤인데
아직 남은 푸른 내 맘, 소쩍새가 어찌 알까
정 많음이 병이라서, 잠 못 들고 뒤척이네.


고려 후기의 문신 이조년의 시가 절로 떠오른다. ‘푸른 마음’이 뭘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왠지 공모의 미소를 짓게 된다. 나이 탓일 게다. 이 무정한 세월도 잠시 한눈파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까?
요한 루트비히 우얼란트의 시에 프란츠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봄을 믿는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깨어났습니다.
여기저기 속삭이고 살랑거리며 밤낮 불어옵니다.
이렇게 창조의 완성은 여기저기서 날마다 계속됩니다.
오, 신선한 향기, 새로운 울림이여
이 신비 속에서 무언가를 근심하고 있다면
그대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
지금 여기,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하며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봄바람에 깨어나는 저 다양한 생명들이야말로 창조의 완성이란다. 생명의 기운이 넘실넘실 온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계절에 잠시 근심을 내려놓는다고 하여 세상이 속절없이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 겨울에 아몬드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주변의 나무들이 일제히 아몬드나무의 허영심을 비웃었다.

저렇게 교만할 수가! 생각해 봐, 저 나무는 저렇게 해서
자기가 봄이 오게 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지!


아몬드나무 꽃들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용서하세요, 자매님들, 맹세코 나는 꽃을 피우고 싶지
않았지만 갑자기 내 가슴 속에 따뜻한 봄바람을 느꼈어요.


목석이 아니고서야 어찌 봄바람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봄바람’은 땅만 바라보며 살던 이들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한다. 건성건성 보던 눈이 세심하게 바라보는 눈으로 변한다. 꽃등을 인 것처럼 환한 꽃 세계를 바라보다가 어느덧 그들도 꽃으로 변한다.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잔뜩 찌푸렸던 얼굴이 환하게 열리면서, 소통의 문도 함께 열린다. 아무 이해관계 없는 이들을 향해 벙싯 웃어줄 여유가 생긴다. 세상은 그만큼 밝아진다. 봄이 인류에게 주는 선물이다.
행복의 신기루를 좇아 질주하는 삶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경탄의 능력’이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는다. 모든 게 무덤덤해지고 시들해진다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 그것은 늙음의 징표이거나 타락의 징후이다. 경탄할 줄 안다는 것, 그것은 우리를 비인간화시키는 일체의 제도와 관습의 질곡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한 눈 파는 이들 말고 누가 세상의 아름다움 앞에 멈춰 설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유용성이라는 우상을 떨쳐버린 이들이 아니라면 누가 한 눈을 팔 수 있단 말인가?
정진규 선생의 <몸詩 14>를 읽는다. 시인은 산천에 지천으로 핀 진달래꽃을 보고 온 보람을 이렇게 노래한다.

한 사날 가슴도 덜 답답하고
밥맛도 좋고
숙변까지 시원하게, 변비도 없어지고
사랑도 잘 보이고


이것 참 좋지 않은가. 세월이야 어떠하든, 사람살이의 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때가 되면 ‘그냥 왈큰왈큰 알몸 열어보이는 진달래’를 바라보다가 시인은 마침내 무덤까지도 열리는 것을 본다. 무덤의 열림은 감춰졌던 생명세계의 귀환이다. 끝없는 이익의 굴레에 갇혀 싸우고 갈등하는 세상에 의해 가려졌던 생명에 접속된 순간, 시인은 마음의 빗장이 열리고 있음을 본다.

지금 나 한 사날 잘 열리고 있어
누구나 오셔, 아름답게 놀다 가셔!


멋지지 않은가? 계절은 봄이지만 여전히 겨울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가난과 질병과 공포, 무기력과 무의미, 수치심과 모욕감에 사로잡혀 얼어버린 영혼들에게 봄소식으로 다가설 이들이 필요하다. 이 아름다운 봄날은 우리를 그 자리로 부르고 있다.

김기석
청파교회 담임목사. 문학적 깊이와 삶의 열정을 겸비한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이다. 그는 시, 문학, 동서고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진지한 글쓰기와 빼어난 문장력으로 신앙의 새로운 층들을 열어 보여준다. 이 글은 <아슬아슬한 희망>에서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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