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같은 시간을 만들어보자”

감사절이 지나고 나면 문경 씨는 크리스마스 상자를 들추어 장식품을 손질하기 시작한다. 12월 첫날부터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싶어서다. 자신의 생일보다 크리스마스를 더 좋아하는 남편에게 맞춰 시작된 일이지만 이젠 함께 12월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서둘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기쁨에 동참하고 있다. 해마다 장식을 하다 보니 어느 해엔 빨간색을 주로 쓰고, 다음 해엔 초록색이나 흰색, 황금색으로 돌아가며 다른 분위기를 내는 즐거움까지 느낀다.
살아오며 몇 해 동안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 적도 있다. 삶이 고단하고 마음 쓸 일이 너무 많아서 기운을 내지 못한 거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으나, 무척 허전했던 기억이 있다. 크리스마스는 준비하면서 가슴이 벅차다는 것을 우리는 어렸을 적에 배운 거 같다.

12월은 크리스마스의 날들
초등생 시절 어른들 예배에서 특별하게 단장하고 앞에 서는 날, 그것을 위해 우리는 저녁마다 성경(마태복음 2장, 누가복음 2장 등)을 암송하느라 애쓰고, 노래극을 연습했다.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던 선생님의 모습과 우리의 흥분되어 있던 마음이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준비하는 거’라고 새겨준 거 같다. 중고생이 되어서는 연합 찬양대로 칸타타를 웅장하게 연습하며 그 멜로디와 화음에 반하기도 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오면 일 년 중 유일하게 밤을 새는 것이 허락된 그 밤, 새벽 송을 부르러 나가기 전까지 얼마나 신나게 웃으며 어울렸던가. 그 밤의 국밥과 간식들은 풍성하고도 못 잊을 만찬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것은 철이 들고 한참 지나서였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크리스마스카드에 감사의 인사말을 쓰는데 정작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담겨 있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기 예수 이 땅에 오심이 천 수백 번(2000년대 이전)을 헤아리지만 그리스도 우리 마음에 오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을 쓰게 되었고, 어느 해엔 말씀을 읽다가 ‘예수님이 아기로 오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처음부터 다 알기 원하심’이란 깨달음을 넣기도 했다. 또 마구간에서 나신 것은 미천하게 사는 우리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써 넣은 해도 있었다.
이렇게 긴 카드 문장을 손 글씨로 수 십장이나 쓰곤 했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면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지낼까.
선물과 같은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혹, ‘물질보다 마음’이라고도 하고 ‘마음만 있으면 뭐해. 물질이 따라야지’라고도 하니, 그 둘을 합쳐 ‘마음이 든 선물’을 나눌 준비를 한다. 먼저 나누는 기쁨을 생각하며 내어놓을 수 있는 것들을 꺼내보자. 양말, 장갑, 영양제, 좋은 책, 화장품, 목도리, 가방, 입을 만한 옷, 컵이나 액세서리 등등. 새로 산 것이 아니면 어떠랴.
해리 데이비스가 쓴 <타샤의 크리스마스>에서 타샤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멋과 낭만을 나누기 위한 타샤의 크리스마스에 초대합니다’라는 문구로 초대장을 보내고 집을 오픈할 준비를 한다. 손수 만든 과자와 빵, 젤리, 뜨개질한 숄, 초 등을 진열하면서 “때로는 기대가 실제보다 더 감미롭다”고 말한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동안 과정의 소중함과 어린 시절의 꿈을 일깨워볼 수 있다. 세상이 우울해도 삶의 기쁨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우리도 비슷하게 해보자. 12월 어느 오후를 잡아 집이나 카페에 모이도록 초대장을 만들어 나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오는 아늑한 실내에서 따듯한 차를 마시며, 평안과 소망의 시나 성경을 낭독한다. 또한 한 해의 감사를 이야기하다가 준비된 선물 중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고르게 하는 것은 어떨까.
문경 씨는 초대 대상으로 다문화가정을 우선으로 꼽는다. 그 다음에 마음이 가는 사람들을 넣기로 한다. 구성원에 따라 두 세 차례로 나누어 만남을 만들어도 좋을 듯하고, 이렇게 시간을 내거나 외출이 어려운 이들에게 선물을 들고 집으로 직접 찾아가 산타 역할을 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리라 여겨진다.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선물
초등학교 4학년 때, 대학생이던 사촌 오빠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연필 한 타스를 내밀었다. 짙은 초록색 연필 12자루. 거기엔 내 이름 석 자가 연필마다 잘 박혀 있었다. 감동이 올라와 “오빠, 고마워”라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떨리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옆에 있던 동생이 “고마운데 왜 울어?”라고 물었지만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고마우면 누구나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걸.
크리스마스에 이런 선물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객원기자 전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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