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다섯 번에 걸친 로봇 알파고와 바둑왕 이세돌의 바둑 대국을 보며, 이것이 과연 세계가 열광하며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할 만큼 중요할까, 과연 필요한 대국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둑에 대해서나 로봇 과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과학이 인간에게 언제나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의 발달이 세상을 점점 인간의 조절범위 밖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 생활이 얼마나 편리해졌습니까, 얼마나 속도감이 생겼습니까. 스마트폰만 보더라도 그 기능이 우리 삶을 혁신적으로 바꾸었지만, 앞으로 우리를 어디로 치닫게 할지 염려스럽지 않습니까.

편리와 재미에 빠진 사회
마약을 먹어서 마약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생활 속에서 편리와 재미에 빠져 모르는 사이에 기계화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어쩐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가 오버랩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벨탑이 처음으로 높이 세워지던 그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열광했겠는가, 흥분하며 기뻐했겠는가 그려졌습니다. 사람과 로봇을 두고, 굳이 대결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머리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당연히 로봇이 이기도록 로봇에게 최선을 다해 연구해서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온갖 지식들을 입력해 놓았는데, 인간 이세돌의 승리를 기대한 사람들은 어쩌면 매우 감상적이거나 비과학적인 사고패턴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이세돌 9단이 한 번이라도 이긴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두뇌의 가능성의 양면
이런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허락하신 두뇌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축복’이라 해석하기도 하고, 반대로 조물주의 뜻에 반하여 탐욕을 품은 인간의 말로를 예견하며 ‘저주’를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요즘 우리 삶의 현장 속에는 흉측한 사건사고들이 줄을 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동행 독자들과 ‘건강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렇게 회복된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커버스토리로 꾸린 ‘건강한 마음의 보호선 울타리’ 이야기도, 감사운동도, 생명환경운동도, 그리고 지면마다 담긴 사람 이야기 속에도 생명력으로 가득합니다. 걸어가는 속도를 조금 늦추어 서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담기는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봅시다. 그리고 혹시라도 불필요한 것들이 끼어있다면 털어내고 생명력으로 회복해 갑시다.
내 안에 바벨탑이 있다면 털어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인정하는 평온,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꾸는 용기,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구하는 복된 계절되시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