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인생 건축’ 말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약속, 우정, 내가 존중하거나 무시하는 모든 일이 이 인생건축의 일부입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인격과 삶의 질을 결정하고 내 삶의 건축물로 남게 됩니다. 내가 내린 모든 결정이 내 집 건물, 즉 내 인생의 재료가 됩니다.
생활 속에서 저지른 부정한 행위, 직장이나 학교에서 경쟁상대를 모함한 것, 배우자 모르게 불륜을 저지른 것, 남을 속이고 갈취한 것, 도둑질한 것, 나쁜 생각들…. 이 모든 것이 내가 짓고 있는 집의 재료들이고 ‘실체’입니다.

내 삶의 건축물
우리가 짓는 집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그에 따라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날이 그것을 환히 보여줄 것입니다. 그것은 불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고린도전서 3장 12~14절)
인생의 큰 폭풍우를 몇 차례 경험해 본 사람은 우리의 인생을 어려움 없이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환상이 얼마나 큰 착각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만날 폭풍우가 언제, 어떤 것으로 닥칠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폭풍우가 있을 것임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폭풍우를 만난 후, 과연 우리의 모습이 어떨 것인지를 그려보면 삶의 건축물을 허술하게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만납니다. 내 삶의 집이 폭풍우를 만나면 그 실체가 여실히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무엇으로?
오늘 자신의 실체에 대해 인정하지 않아도, 또는 모른 체해도, 언젠가 삶의 폭풍우에 직면해 보면 그 흔들림의 강도나 방향에 따라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부끄럽고 추한 것들이 우리 삶의 건축물을 덮을 때 폭풍우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가릴 수도 가려지지도 않을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현실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판의 날에 마침내 온전히,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니까요.
우리 인생을 ‘어디에, 어떤 재료로’ 짓겠느냐 하는 질문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을 것인지, 반석 위에 지을 것인지, 그리고 짚으로 지을 것인지 벽돌로 지을 것인지 말입니다.

엄청난 착각
미국에서 가장 기이한 집은 윈체스터 부인의 ‘윈체스터 하우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윈체스터 부인은 남편과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고 괴로운 세월을 보내던 중 신비주의 사상에 사로잡혔습니다. 자기가 집을 짓는 동안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대형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윈체스터 하우스는 16명의 목수들이 38년 동안 지은 집입니다. 2천 개의 문과 16만 개의 창문이 있었습니다. 그 문은 그것을 설치한 사람에 의해 딱 한 번만 사용되었는데 모든 손잡이가 뒤틀려 있었습니다. 비밀 통로, 감춰진 복도, 천장으로 연결된 채 끝나버리는 계단, 막다른 벽으로 안내되는 문 등,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찾아올 죽음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죽음’은 전혀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놀라운 방향 감각을 갖고 바로 왔습니다.
윈체스터 부인이 죽은 뒤 건축 자재 및 쓰레기를 집 밖으로 운반하는 데 8대의 대형트럭으로 꼬박 50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정말 엄청난 집입니다. 하지만 모래 위에 세워졌습니다.

2016년, 나의 건축물은?
산상수훈의 결론은 반석 위에 세운 집만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가 어떤 삶의 건축을 할 것인지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송준인
청량교회 담임목사로 총신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서울대 영어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텔렌보쉬대학에서 <생태신학>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개혁주의 생태신학> 등이 있으며, 아름다운동행 생명환경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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