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로 무너진 마을

작년 5월 무렵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에 위치한 바다크샨 지역에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외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산사태가 발생한 바로 그 마을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그 인근에서 사역을 했었기 때문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 지역입니다. 집들은 그 민둥산 기슭을 따라 다닥다닥 몰려 있었습니다. 조금만 비가 와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왜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곳이라 그곳에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방은 온통 깎아지른 절벽과 황량한 불모지뿐이기에 산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민둥산 중턱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는, 아니 비가 와서는 안 되는 그곳에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지반이 튼튼하지 않은 메마른 민둥산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산중턱과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주민들은 흙더미에 모두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부가 구조 포기…집단 무덤
이런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정부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가 구조를 위해 마치 경쟁을 하듯 구조팀을 신속하게 파견하고 구호품도 항공기를 통째로 대절하여 실어 나르는 모습을 TV를 통해서 우리는 자주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모습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구조대라고는 몇 자루 삽과 곡괭이를 들고 달려온 인근 마을 주민들이 전부였습니다.
그곳에서 활동하던 단체의 발표에 의하면 2천7백여 명이 산이 무너지며 쏟아진 흙더미에 묻혔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1천명 가량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누구도 정확한 피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말로는 대략 1천2백여 명이 사망하고 4백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정도만 짐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분초를 다투어 구조 활동을 벌여도 모자랄 판에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지원할 수 있는 장비도 없을 뿐더러 그곳까지 장비를 운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안타까워하는 이웃 주민들만이 맨손으로 흙을 파내다가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구조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흙더미가 덮어버린 마을은 ‘집단 무덤’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매정하고 원망스런 곳은 정부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참사가 벌어진 사건임에도 세계 언론은 딱 이틀 동안 그곳 상황을 단신으로 전하고는 소식을 끊었습니다. 아프리카 정글에서 코끼리 1천마리가 떼죽음을 당해도 이 정도로 무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강대국 시민 중 한 명이 그 흙더미에 묻혀 있었다면 그 나라는 물론 유엔까지 나서서 구조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겁니다. 생명의 값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많이 아팠습니다. 오래전 그 지역에서 주민들을 도왔고, 남아있는 어린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을 가슴에 새기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엄마를 저기서 꺼내주세요”
인근에서 사역하던 친구를 급히 찾았습니다. 나를 위해 직접 그곳에 다녀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친구는 안타까워하는 나를 위해 어려운 걸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려 간신히 그 마을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친구가 마을 인근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언덕 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어린아이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산사태가 일어나기 며칠 전 친척집에 보내져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바빠진 부모는 친척에게 아이를 부탁했던 모양입니다. 아이는 그래서 참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와 다른 식구들은 모두 흙에 묻혀 사망했습니다.
아이는 자기 마을이, 식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언덕너머 비탈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그 아이가 안쓰러워서 품에 꼬옥 안아 주었습니다. 아이는 얼굴을 친구의 가슴에 파묻고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부탁했습니다.
“엄마를 저기서 꺼내 주세요. 내 엄마, 저기에서 꺼내주세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며칠간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책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관심도 없고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부모, 형제 자매였기 때문입니다.

무명의 선교사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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