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후원자가 함께한 가브리엘의 집 ‘보배’들 제주도 여행

지적, 지체, 시각 또는 자폐 등의 장애를 갖고 있는 29명의 중복(중증)장애인들을 김정희 원장과 9명의 교사들이 돌보며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데, 교사들은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뜻의 ‘보배’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부른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가브리엘의 집’ 이야기이다.

제주도 바닷가에 데려가고 싶은데
1년에 딱 한 번, 벼르고 별러야 가능한 해수욕장 물놀이. 그러나 가브리엘의 집 아이들은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해수욕장에서는 놀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 제주도의 한적하고 맑은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쉽게 엄두가 나질 않았지요.”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김정희 원장의 바램을 들은 이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모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정상 함께 못한 3명을 제외한 26명의 아이들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휠체어만 13대, 부축을 받아 짧은 거리를 걸을 수 있는 3명을 제외하곤 온전히 봉사자에게 안겨 이동해야 하는 인원만 10명이다. 공항으로 이동해서 비행기를 타고, 또 관광버스에 오르내리는 일은 도움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행 경비는 물론이고, 매끼마다 밥하는 일도 걱정이었다. 먼저 손을 내밀어 준건 ㈜사랑의밥차(대표 채성태)였다. 여행 소식을 듣고, 제주도까지 밥차를 가지고 와 식사 일체를 준비해주기로 한 것.
(주)SK에서도 제주 월드컵 경기장 방문 안내 및 버스 대절 비용을 후원해주기로 했다.
이제 필요한 건 봉사자들의 손길. 여행 기간에 시간을 낼 수 있는 부모들과 평소 가브리엘의 집을 방문하던 봉사자 중 몇몇이 자원했다. 아이 한 명에 봉사자 한 명, 때로는 더 많은 인원이 있어야 하기에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했다. 기존 봉사자들은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부득이하게 새로운 봉사자들을 많이 구했다.
가브리엘의 집 후원자 및 교사들의 가족과 지인, 그리고 예전에 함께 일하던 교사까지 모두 모여 얼추 50여 명이 되었다.
보배들과 교사, 인솔 봉사자들과 사랑의밥차 봉사자까지 더하면 약 100여 명이 제주도 여행에 함께 했다. 자원해준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여행이었고 취재를 위해 2박 3일간 동행하며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비행기-새로운 경험을 위해
출발일, 가브리엘의 집에 모두 모였다. 근처 서울역에서 김포공항까지 공항철도를 이용할 계획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주변 지역교회에서 25, 35인승 버스를 내준 덕에 편하게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 아이가 심하게 몸을 앞뒤로 흔든다. 턱받이를 하고 있었지만 연신 흔들리는 몸에 이리 저리 침이 흐르고, 급기야 앞좌석에 쿵쿵 머리를 박는다.
뒤에 기대어 잠을 청하라고 말해보아도 알아듣는지 알기 힘들어 하는 눈치다. 낯선 행동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학교에서 초등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휠체어로 제주도 여행이라니 정말 놀라워요. 보통 장애 아동 수보다 교사 수가 적으면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주기가 어려운데, 많은 봉사자분들이 오셔서 일대일로 돌볼 수 있기에 아이들을 최대한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수용 봉사자(25)
이번 여행의 진행을 맡은 김운식 목사(조안교회)는 저녁 예배 설교를 통해 “여러 가지가 불편하더라도 어찌하든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우리 자신을 내려놓자”고 전했다.
한 봉사자에게 오늘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웃으며 말한다.
“고생하려고 온 걸요.”

바다를 즐기게 하기 위해
둘째 날의 하이라이트는 물놀이였다. 금릉해수욕장으로 이동해 수영복으로 갈아입히고, 휠체어로 모래사장까지 이동하여 바닷물에 적셔주자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밥도 누군가 먹여줘야 하고, 옷도 입혀줘야 하지만, 물에서 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인지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했다.
“지인의 소개로 오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간호를 오래 했는데, 휠체어 미는 것이 익숙하니 함께 하면 좋겠다고 해서 봉사하러 왔습니다. 다른 분들을 보며 도전을 많이 받게 돼요. 휠체어를 밀고 모래사장에 와서 물놀이를 시켜주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까지, 정말 보통 일이 아닌데 다들 대단하세요.” - 류난희 봉사자(46)
물놀이와 관광을 위해 이 날 하루만 10번이나 버스에 오르내렸다. 휠체어는 고마운 이동 수단이지만 봉사자들에게는 마치 체력단련 도구와 같다. 버스에 타기 위해 한 명은 안아 태우고, 다른 한 명은 휠체어를 접어 실어야 한다.
버스뿐만 아니라, 계단을 다닐 때도 남자 봉사자들의 손길이 절실하다. 힘이 들만도 한데, 너나할 것 없이 안아 옮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 되는 것을 보며 봉사의 기쁨을 느낀다.

뿌듯함과 의미를 준 아이들
마지막 날이 되자,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아 힘들었어요. 그런데 감으로, 느낌으로 소통을 하다 보니 봉사가 즐거워집니다. 원하는 것을 제가 알고 해줬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 김종균 봉사자(47)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저는 이제껏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 또한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힘껏 살아가고 싶어요.” - 김일 봉사자(48)

기쁨을 나누니 배가 되었다
직장 휴가를 맞춰 온 봉사자, 가족 여행 겸 온 가족이 함께 온 봉사자, 할아버지를 따라온 어린 봉사자까지 다양한 이유로 왔지만 모두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나누어준 이들.
허리 펴고 편히 제주도 풍경을 감상할 여유는 없었지만 어느 휴가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간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정희 원장은 말한다.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낯설어하고 꺼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배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신나는 음악에 흥겨운 춤사위로 즐거워하고, 주어도, 목적어도 빠진 말이지만 서툴게 자신을 표현하고, 얼굴 근육을 찡그리며 기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보며 모두가 행복감에 젖는다.
누구보다 행복해한 이들은 보배와 그 가족들이다. 함께 한 부모들은 연신 감사를 전한다.
“몸이 불편한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고생스럽게 씻기고 입히시는 것을 보면서 선생님들과 봉사자들에게 정말 감사하게 됩니다.”
“아이들 표정을 좀 보세요. 정말 밝잖아요.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 주시는 것이 감사하고, 그래서 더욱 제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감사합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던데, 장애인을 돌보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 감당하니,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만 남는 듯했다.
이번 여행에 참가한 봉사자들은 입을 모아 아이들이 천사 같다고 말한다. 깨끗하고 넓은 제주도 바다처럼 순수하고 맑은 보배들을 대할 때 자신들도 순수해지는 것만 같다고.
보배들이 천사인 이유는 우리가 서로 함께 돕고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걸 일깨워주기 때문은 아닐까?
돕기 위해 왔다가 ‘보배’를 발견한, 제주도가 보물섬이 되는 빛나는 여행이었다.

제주=우수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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