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이 피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계절, 3월 26일. 이화여자대학교 작은 강당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열다섯 명의 외국인 장학생들이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아프리칸에서부터 몽골인까지, 13개국에서 온 이들의 한복 차림은 어쩌면 어색해 보일 수도 있는 광경인데, 참 아름다웠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의 환영사, 대외협력처장의 인사말에서 이 자리의 의미가 설명된다.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뽑혀온 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아장학재단 이충선 이사장이 팔순을 기념하며 시작한 장학사업으로 열매맺은 ‘전액 장학생’의 행운아들이다. 이 열다섯명을 위해 한아장학재단이 60만불을 내놓자 학교에서도 이만큼 매칭해서 일체의 비용을 감당해주게 된 것이다.
잔치는 장학금을 내놓은 이충선 이사장(사진)의 팔순을 기념하며 이화여자대학교가 베푸는 축하자리인 셈이다. 이날 잔치에서 가장 눈에 띈 하객이 바로 이들 장학생들 이었다. 그 외국인 배꽃 아가씨들의 한복도 한아장학재단에서 마련해 입혔다.
129년 전, 여성의 교육이 무엇인지 모르던 당시에, 이화학당 설립자인 스크랜튼 선교사가 가르치며 보여주었던 나눔과 섬김, 그리고 하나님 사랑의 정신을 펴는 이 터전에서 이제 다시 개발도상국에서 뽑혀 온 열다섯명의 배꽃 젊은이들을 맞은 기쁨, 기대, 감사가 전해져 온다.
이충선 이사장은 피부색도 생김새도 아주 다른,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이국인 배꽃처녀들을 향해 사랑을 고백한다.
“여러분은 언제나 내 기도의 제목이며 꿈나무들입니다. 여러분은 행운아들입니다. 129년 전에 이 땅에 심은 한그루의 배꽃나무가 오늘 이렇게 만발한 이화학당이 되었듯이, 여러분이 이곳에서 배우고 여러분의 땅으로 돌아가서 이룰 ‘지구를 감동시킬 일’ 들을 생각하면서 저는 가슴이 벅찹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충선 이사장의 꿈이야기는 이어진다.
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펼쳐질 일들을 위해 여기서 아주 잘 배워라. 배운 것을 자기나라 형편에 맞추어 적용하면 아주 멋진 일을 이루고 보람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벌써 ‘열다섯명’이라는 아주 대단한 글로벌 인맥을 가진 부자인 셈이다. 이것을 네트워킹하고 이 다리(bridge)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면 엄청난 힘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바쁜 이민 생활에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키웠지만 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승’이었다며 이 사랑하는 아들 딸이 이 사업을 잘 이어가길 바란다고 고백했다.
여기에 감동이 또 이어졌다.
어머니의 감격에 찬 소감을 들은 딸과 아들이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존경을 표하면서 이 장학재단을 대를 이어 계속해갈 것을 다짐한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할 때, 참석자들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이충선 이사장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유산을 남기는 것은 자녀의 뼈를 무르게 한다는 옛말이 있어요. 자녀들에게 더 큰 정신적 자산을 남겨주는 운동이 꼭 필요합니다. 누가 씨앗을 심든 심기만 하면 자랍니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지는 것보다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