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안식월을 맞아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 끝자락에 있는 파타고니아(patagonia) 국립공원을 다녀오게 되었다. 파타고니아 국립공원은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창조의 신비를 드러내는 비경(秘境)으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몇 곳 중에 하나다.
물론 나이도 있고, 거리도 멀고, 경비도 많이 들고, 여러 날을 매일 적게는 대여섯 시간에서 길게는 열두 서너 시간을 트레킹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더구나 평소에 등산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자연이 황폐해지는 가운데 덜 오염된 오지를 찾아서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를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면서 찌든 심신을 치유하고 재충전하여 남은 사역을 좀 더 잘 해보고 싶은 욕심(?) 하나로 도전을 했다.
처음 만난 여섯 명의 동행자들과 함께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마음에 깊이 느낀 것들은 큰 소득이었다.

행복한 트레킹
사람은 산 아래 살 때는 형편과 처지가 제각기 다르지만 산에 오르면 복장이나 장비,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이 다 똑같아지는데 그 중 하나는 누구나 다 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멀고 긴 트레킹 코스를 따라 매일 산행을 계속하는 동안 땀이 줄줄 흘러 속옷까지 적시지만 제대로 세탁을 하지 못해 밤에 널어놓았다가 그대로 다시 입기도 했다.
물론 목욕도 제대로 못하고, 변변치 못한 식사와 문화시설이 전혀 없는 산장과 텐트에서 옷을 입은 대로 잠자리에 들기도 했지만 별로 불편한 줄 모르고 금방 골아 떨어져 어느 사이에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때로는 새벽 일찍 일어나 다음 목적지를 향해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오르내리는 산행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당연히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라는 불평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힘든 것도, 불편한 것도 다 잊은 채 행복한 트레킹을 했다.
인간의 행복은 잘 먹고 잘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매순간마다 힘과 위로와 기쁨과 앞길을 인도하시고 좋은 날을 주시는 것을 매일 경험한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다.

높은 산을 오르는 이유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 배낭을 메고 숙소를 떠나 첫번째 목표지인 또레스 델 파이네 삼형제 봉을 향해 가파른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전망대에 올랐을 때 3개의 거대한 분홍빛 화강암이 삼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는 거봉을 만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구름이나 비에 가려 그 봉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데 그 날은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파란 하늘과 삼형제 봉우리의 전신을 드러내 보여주심을 체험했다. 이전까지 등산 경험이 별로 없었던 나는 비로소 사람들이 왜 위험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하면서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정상을 보는 기쁨, 정상을 밟는 기쁨, 그것은 힘들게 산을 오르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왜 그렇게 힘들게 등산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세상 아무리 높은 산이라고 할지라도 전문 산악인들에게 하나하나 정복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8000m급 히말라야의 고봉들만 지으신 것이 아니다. 유명 산악인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정복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산을 지으셨다. 그 산의 이름은 ‘여호와의 산’이다. 그 산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거나 나이가 많고 적음, 힘이 있고 없고, 등산 경험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믿음의 산이다.

믿음의 산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올라 받는 복이란 한시적으로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는 영적인 복이다. 그 복은 예배자가 거룩한 산, 하나님의 산에 올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이다.
높은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수고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산에 오른다고 해서 다 정상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구름을 걷어 주셔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믿음과 구원도 마찬가지다. 내가 산을 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오르게 하신 것이다. 내가 보고 싶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이다.
인생살이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누리기 때문에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찬송가 491장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 합니다.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신앙생활은 한가하게 노니는 소풍이 아니다.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을 향해 먼 길을 마다 하지 않고 날마다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높은 산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자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규왕 목사
수원제일장로교회 담임목회자로, 교회의 전통을 지켜가면서 지역에 문을 열고, 변화하는 지역사회를 위해 사회봉사 음악 문화 다문화사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섬기는 목회를 하고 있다. 복음으로 가정을 건강하게 세워가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힘쓰는 목회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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