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 가족 이야기’

헉헉,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온 몸이 망치로 맞은 듯 아파옵니다.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아니, 멈춰서는 안 됩니다. 꼴등으로 들어가도 상관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것입니다.
저는 은총이 아빠입니다. 11살짜리 우리 아들 은총이는 6가지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많이 아팠더랬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태어난 지 100일 된 은총이를 보고 6개월 밖에 못 살 거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붉은 점으로 뒤덮인 아들 얼굴을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괴로웠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들을 위해, 이 땅의 수많은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마라톤대회와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을 연속해서 하는 철인3종경기. 운동 한 번 제대로 안 하고 살던 제가 우리 아들 은총이와 함께 달립니다.
힘들지요. 그러나 내 아들과 달리는 이 길을 어찌 포기할 수 있을까요. 내 아들 은총이도 저렇게 잘 버티고 있는데, 내가 이것 하나 못하겠습니까. 달리는 것, 이게 제 사명입니다. 제 십자가입니다.
이 땅의 희귀난치병을 갖고 고통하는 아이들을 도와주십시오. 이 아이들을 귀하게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이 땅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힘내라고 응원해 주십시오. 저는 이 소원 하나만 가지고 뜁니다.
나는 아버지입니다. 우리 은총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표 아버지가 되려고 오늘도 뛰고 있는, 나는 아버지입니다!


은총이 태어나다
부모의 이혼, 사별, 재혼, 가난 등으로 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박지훈(39‧군산양무리교회 집사), 김여은(36) 부부에게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 이혼하지도 말고 먼저 하늘나라에 가지도 말자고 맹세하며 평범하게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랬던 부부가 평범하지 않은 지금의 삶, ‘특별한’ 삶을 살게 된 것은 2003년 아들 은총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검붉은 얼굴에 팔은 앙상하고 왼쪽 다리보다 오른쪽 다리가 훨씬 굵어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백일쯤 아이가 경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손과 발은 물론 왼쪽 콧구멍, 왼쪽 입술 심지어는 왼쪽 장기들까지 밖으로 뛰쳐나올 기세로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2, 3분 내에 멈추어야 하는 경기가 세 시간 넘게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지요.”
진단을 받았다. 뇌혈관 기형으로 검붉은 반점이 나타나고 심한 경기를 동반하며 뇌가 서서히 위축되고 돌처럼 굳어가는 스터지-웨버 증후군, 다리 한쪽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며 길어지는 클리펠-트레노우에이-배버 증후군 등 이름도 외우기 힘든 희귀난치병 3가지를 포함해 여섯 가지 불치병을 안고 태어난 은총이.
“병원에서 울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그런데 여자 화장실 쪽에서 저처럼 오열하는 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가 나처럼 우나, 하고 가만히 들어보니 아내였습니다. 아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 3월 어렵게 뇌수술을 받은 후 은총이는 한 번도 경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재활치료를 받고 태어난 지 4년 6개월 만에 아무 지지대 없이 혼자 걸음을 옮겼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현실로 다가온 어려움
은총이가 많은 병을 가지고 태어난 게 꼭 자신들의 죄 때문인 것 같아 울며 기도하던 어느 날 은총 엄마 김여은 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은총 아빠를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이 땅에 큰 열매를 맺기 위해 은총이를 맡길 가정을 찾다가 우리에게 맡기신 거라고요.”
교회는 다녔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던 남편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을 세우신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 열매가 있겠구나 하는 기대, 그렇지만 그러나 ‘현실’은 살아내야 했다. 아이 병원비, 수술비가 엄청났다. 결국 감당하다 못해 박지훈 씨는 신용불량자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냥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용직 노동자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지내던 2006년 10월 13일 희귀난치성 질환 어린이 후원모임인 ‘여울돌’의 박봉진 대표와 함께 1500킬로미터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국토대장정을 통해 은총이와 같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고, 난치병 의료보호항목을 재정비하여 사회적으로 고통이 분담될 수 있도록 환아가정의 척박한 현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철인 은총 아빠’로 있게 해준 계기가 바로 이 국토대장정이지요.”

마라톤과 철인3종경기에 ‘도전’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기 몸 하나 주체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은총이 아빠는 은총이가 탄 휠체어를 밀며 아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완주한다. 철인3종경기에는 아들을 사이클 뒤 수레에 싣고, 보트에 태우고 달리고 헤엄친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사람들 시선 때문에 집에만 갇혀 지내는 은총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마라톤과 철인3종경기에 도전하는 딕 호이트와 릭 호이트 부자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그의 꿈에 박수를 쳐준 이가 있었다. 은총이 가족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편지를 받고 2010년 1월 미국에서부터 군산까지 부모님과 함께 은총이 가족을 방문한 ‘지선아, 사랑해’ 작가 이지선 씨의 응원 때문이었다.
“말로만 철인3종경기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던 저에게 지선 자매는 철인3종경기 꼭 완주하셔서 대한민국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멋지고 위대한지 온 세상에 보여 주세요 하시더라고요. 그 후 지치거나 힘들면 늘 그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2010년 10월 16일 은총 부자는 생애 처음으로 철인3종경기에 도전했다. 그리고 4시간 20여 분만에 완주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와 아버지가 완주한 것은 호이트 부자에 이어 세계에서는 두 번째, 아시아와 대한민국에서는 최초였다.

또 다른 ‘은총이 가족’들
30회가 넘는 마라톤대회 참여와 6번의 철인3종경기, 이지선씨를 통해 연락을 취해 온 가수 션 씨와는 마라톤대회와 철인3종경기도 함께 나가게 되었다. 또한 책 출판과 방송까지 정말 은총이 때문에 유명해진 ‘은총이 아빠’다.
그러나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금도 매일 주기도문을 하루에 100번씩 외우며 연습한다. 완주하고 있지만, 기록을 앞당기기 위해서,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수없이 많은 이 땅의 ‘또 다른 은총이’를 돕기 위해서.
처음에는 눈물로 달렸다면 이제는 또 다른 웃음과 감사로 달리고 있다. 이제는 함께 달리는 가족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은총이의 희망 놀이터’라는 이름의 재능기부 콘서트가 열리고, “하나님을 자랑하자”란 뜻의 은총이를 후원하는 ‘하자’팀은 마라톤마다 함께 참석하여 달리고 있다. 또한 지난해에 출간된 ‘우리 은총이’(홍성사) 책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후원자 원근희 씨(커넥션교회)는 아로마 테라피 관련 제품 판매를 준비하며 은총이 뿐 아니라 희귀난치병 아동 돕기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본인도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있으며, 이희아 양의 이야기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를 출간한 바 있는 고정욱 동화작가는 은총이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저술하여 6월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은총이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만들어 많은 어린이들은 물론 부모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고, 책 판매금액 일부는 푸르메 재단 어린이 재활병원 짓는 곳에 기부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해 전북 군산 새만금 일대에서 열린 철인3종경기대회에는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가수 션과 은총이 부자가 함께 경기에 참여하여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 위해서 7천만원을 기부했다.
“우리 은총이도 얼굴도 모르는 분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저희가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이지요. 은총이에게는 돈보다는 사람을, 이런 세상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함께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열심히 나누며 살아갈 것입니다. 제가 걷는 한걸음 한걸음이 주님을 향한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 예수님 믿지 않는 분들이 많을 텐데, 우리 아이가 예수님의 향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올해에만 5, 6개 철인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며, 오는 6월 30일에는 ‘은총이와 함께 하는 희망나눔 철인3종경기대회’가 여주에서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전국철인3종경기연합회 주최로 열릴 예정이다.
“은총이 데리고 천국 가는 그날까지 힘들어도 뛰어야죠. 그게 제 직업입니다. 은총 아빠, 주님께서 세워 주신 은총 아빠라는 직업 가지고 열심히 살 것입니다.”
은총이를 만나 은총이 아버지는 ‘진짜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은총이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품어 안으려고 오늘도 달린다.

은총이에게


너의 웃음이
나의 웃음이 되고
나의 꿈이 되어
그 웃음을
그 꿈을
내 목숨을 다해 지켜줄게.
내 목숨을 다해서…
사랑해서 너무나 사랑해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은총아…
못난 아빠가 끝없이 언제까지나 사·랑·한·다.
우리 주님은 아들인 나의 행복과 꿈을 위해서
모든 영광, 보좌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죽기까지…
그 마음을 발끝이라도 닮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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