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길을 걸으면서 80년대의 한 때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생선 궤짝 몇 개를 이어 붙여 만든 우리 안에는 토끼 몇 마리가 배춧잎을 뜯어 먹고 있었다. 울타리라 할 것도, 마당이라 할 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는 평상이 놓여 있었고, 소매 달린 런닝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부채를 천천히 부치고 앉아 있었다. 그 옆엔 손자 녀석인 듯한 열 댓 살 먹은 사내아이가 옥수수를 불고 있었다. 투박한 화분이 낡은 담장 밖에 죽 놓여있고 붉은 맨드라미가 심겨져 있었다. 더구나 바로 옆은 기찻길이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길을 발견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 길을 걷노라니 시간을 거슬러 즐거웠던 유년의 어느 한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발견한 ‘고흐의 길’
나는 그 길을 멋대로 ‘고흐의 길’이라고 명명했다. 그 동네 어딘가에서는 분명, 장차 고흐 같은 화가가 태어나 자라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고 뛰는 아이가 그렇게 자라지 않을 리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길 초입에 ‘걷고 싶은 거리’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뿌듯한 마음 한편으론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나만 알던 단골 식당이 어느 날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기분이랄까. 아무 때나 가도 반갑게 맞이하던 곳이었는데, 이젠 손님이 많아져 예약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이 된 것만 같았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만의’ 걷고 싶은 거리도 있다.
초등학교 가는 길이, 내 눈에는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친한 친구를 데리고 산책을 하곤 했는데 그러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도대체 뭐가 예쁜 길이란 거야라는 표정이었다.
여기가 원래는 무릎까지 풀이 자라는 공터였어. 그리고 저기엔 돌비석이 있었어, 생뚱맞은 곳에 말이지. 지금 여긴 차가 다니는 복잡한 도로가 됐지만 원래는 가로수가 양쪽으로 빼곡했어. 여름이면 송충이가 후드득 떨어져서 아이들은 비명을 질러댔지.

나만의 걷고 싶은 거리
이런 설명도 다 필요 없었다. 친구의 눈에는 그저 차가 매연을 뿜어대며 지나다니고 아파트가 들어선 단지로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 눈엔, 그 길 너머에 신기루처럼 옛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그 길은 내게 ‘걷고 싶은’ 거리이고 아름다운 길이자, 추억이 되살아나는 곳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의 일이다.
난 ‘고흐의 길’을 다시 걷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찻길은 사라졌고 평상이 있던 집들은 모조리 신축빌라로 탈바꿈했다. 길은 넓어졌고 잘 닦여져 있었으나 전혀 걷고 싶은 거리가 아니었다. 다만 ‘걷고 싶은 거리’란 간판만이 빛 바란 채 세워져 있었다. 그나마 변하지 않은 건 그것뿐이었다.
이상하게 그 거리를 걸으면서, 초등학교 때 걷던 길에서 느껴졌던, 추억의 신기루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마도 나만의 거리가 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투자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거리의 역사가 내 역사가 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던 것이다. 저긴 내가 뛰어놀았던 공터고, 여긴 내가 할아버지 곁에서 옥수수를 불던 평상이 있었어, 라는 직접적인 체험마저 없었던 것이다.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추억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사연이 붙어나야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함께 보내져야 한다. 바꾸고 개발하고 변화시키는, 그런 조급함보다는 추억이 숙성되어지는 시간이 거리와 길, 그리고 그곳을 걷는 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 ‘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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