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일을 4분 이내로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유수의 전문가들, 그러니까 의학 박사도 스포츠 전문가들도 입을 모았다. 당시 트랙 4바퀴를 도는 거리가 1마일이었는데, 한 바퀴에 1분씩 달리는 것은 인간이 지닌 한계라 했다. 시간을 단축시키려 욕심내다간 인간의 폐와 심장은 파열되며 근육과 인대가 찢어진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도전하는 육상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마일을 4분 이내 달린 선수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로저 배니스터가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평범한 의대생, 마의 4초벽을 깨다
로저 배니스터는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였으며 의대생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이 기록을 깨기로 했다. 그리고 1954년, 그는 3분 59초 4를 기록했다. 마의 벽이 깨진 것이다. 물론 호흡이 힘들었고 고통을 느끼긴 했으나 폐와 심장이 파열되지 않았다. 근육이나 인대가 찢어진 것도 아니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수백 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기록이, 로저 배니스터의 기록 갱신 이후 줄줄이 깨진 것이다. 불과 한 달 만에 10명의 육상 선수들이 4분 장벽을 무너뜨렸으며, 1년 뒤엔 37명이, 2년 만에 300명이 4분벽을 깼다.
58년이 지난 오늘날, 1마일을 4분 이내 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이는 없다. 인간의 폐와 심장이 갑자기 강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반대로 사람의 어리석음은 어디까지 일까, 라는 생각도 든다.
나보다 많이 배운 사람이 그렇다고 하니까, 혹은 여태껏 쭉 그래왔으니까, 도전할 생각조차 않은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또 시도했다손 치더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건 불가능하다’는 자기 체념으로, 절대 깰 수 없는 ‘마의 벽’이 되어 버려, 종국엔 실패로 내려앉게 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싶기도 하다.

연이은 기록경신의 비밀
하지만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배니스터란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다. 만일 배니스터가 세계적인 육상 선수였다면, 그가 일반인에 비해 매우 월등한 능력과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과연 그 뒤로 그렇게 많은 기록경신들이 나왔을까?
배니스터는 아마추어 육상 선수였으며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분명 사람들에게 ‘만만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저런 사람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대단한 파급력과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다소 만만한 사람’ 아닐까 싶다. 누가 봐도 탁월한 실력을 지닌, 영웅적인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도 했는데 내가 못할 게 뭐 있어’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떠한 심리적 혹은 물리적 장벽을 깨트렸을 때, 끼치는 영향력은 그런 면에서 파격적이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누군가가 이룬 성공에 대해, 조금은 만만하게 여기는 마음(폄하하는 마음과는 다르다)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리란 생각도 든다. ‘저 사람도 했는데, 내가 못할 게 뭐 있어’ 라는 생각이, 결국엔 계속되는 기록갱신의 도미노 현상을 만드는 것 아닌가 싶다.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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