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생명의 숨을 이어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 말씀을 선포하고 해설하는 ‘설교’가 오롯해야 합니다. 기독교 예배에서 설교는 본질상 성례이며, ‘그리스도 사건’을 재연하는 중요한 종교의식인 까닭입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바, 지향하는 바가 모두 설교를 통해 선포되고 가르쳐집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은 일찍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스레 설교하고 듣는 일은 참 교회의 본질적 징표”라고 가르쳤지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삶의 기록인 성경에 터를 둔 설교, 그런 설교가 이루어질 때 조선 교회는 확실히 생명력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 역사’에는 늘 올곧은 설교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거꾸로 설교가 빛을 잃은 곳에서는 신앙도 죽었고, 신앙을 포기하는 곳에서는 ‘말씀’도 사라졌습니다. ‘뒤틀린 기독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꿋꿋이 지키지도, 한결같이 이어가지도 못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의 몸집은 커졌고 신학과 교리는 더 정교해졌지만, 정작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강력한 힘을 지닌 일제의 탄압이 있었고, 그 힘에 빌붙어 교회 권력이나 잡아보려는 윤똑똑이들, 협잡꾼들이 설쳐대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오간데 없고 ‘사람의 궤사’(詭辭)만이 넘쳐났던 탓입니다. 하여 일제 말기에 와서는 더 이상 교회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배교의 늪에 빠지다
1940년에 나온 『희년 기념 설교집』에 실린 설교들은 ‘복음’과 ‘믿음’을 유난스레 강조합니다. 그런데 괴이한 것은 그 복음과 믿음이 일본 군국주의로 대표되는 현존 질서를 긍정하도록 이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전 조선 27개소 형무소에 있는 죄수”들을 “죄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와 같이 무서운 죄악은 오직 인간의 마음속에서부터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야 될 터인데 오로지 이 복음의 위대한 힘으로만 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일제 식민지 체제의 실정법을 어기는 행위를 성경이 말하는 ‘죄’와 똑같이 취급합니다. 현존 식민 체제를 정당화하고 그에 대한 저항을 가로막은 것이지요. 또 “우리 인간들은 모든 것에 결함이 많아서 의분(義忿)이 죄를 범하는 동기가 되는 수도 있으니” 의분도 “마땅히 주의해야” 한다며 불의한 역사 현실에 침묵하도록 종용합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 정책은 적극 두둔하였습니다. 거기에 실린 설교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 천황의 군대는 지금 지나(支那)에서 힘껏 싸우고 있다. 그이들은 대장의 지휘에 절대로 복종하매 군국의 명령에 완전히 의뢰하고 자기네 가진 능력을 전부 다 쓰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자기의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도 이것과 같은 것이다.”
“군국의 명령에 의뢰”하는 것을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인 양 스리슬쩍 꾸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국가, 그것도 제국주의 침략에 나서는 그 국가에 신성을 덧입혀준 것입니다. 이런 설교가 난무하는 곳에 올곧은 신앙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하여 ‘말씀’이 사라진 조선 교회는 배교(背敎)와 배도(背道)의 늪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의에 맞서는 교회
그러나 1920년에 나온 『백목강연』의 설교는 달랐습니다. 설교는 “바벨론이 아무리 개화한 나라일지라도, 괴로운 노예의 생활을 하니 죽은 사람”이라며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일깨우고, 그러나 “공평으로 먹줄을 삼고 정의로 다림판을 삼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편이 되실 것”이라 믿으며 ‘회복’의 날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고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기독교가 “정의의 종교”임을 뚜렷이 밝히고, “하나님의 의(義)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기독인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임을 가르쳤습니다. 아울러 “인류의 진정한 가치는 모든 압박으로부터 해방”에 있으며, “생존경쟁에 약육강식할 것이 아니라 강약이 공존하는 인도·정의·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선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를 모범으로” 삼아 “정의가 골체(骨體)가 되고 정의가 생명의 근본이 된 의롭고 청결한 인물”이 되자고 결단과 행동을 촉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결단이 있었기에 이동휘 같은 이는 “무너져가는 조국을 일으키려면 예수를 믿어라. 예배당을 세워라. 학교를 세워라. 자녀를 교육시켜라. 삼천리강산 한 마을에 교회와 학교를 하나씩 세워 삼천 개의 교회와 학교가 이룩되는 날이 독립되는 날”이라고 설파하면서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분의 정의와 그분의 평화를 선포하는 ‘말씀’이 울려 퍼질 때 교회는 겨레의 아픔을 보듬으며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었습니다. 불의에 침묵하고 체제를 옹호하는 소리로 강단이 더럽혀질 때 교회는 외려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고 ‘강도의 소굴’로 떨어지고 맙니다. ‘말씀’이 떠나버린, 그래서 신앙마저 무너져버린 ‘회칠’한 교회를 향한 주기철 목사의 절규는 그제나 이제나 기독인의 마음을 울립니다.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동방의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나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박규환
숭실대 대학원의 기독교학과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그리스도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예람교회 공동목회자로 사역하는 박 목사는, 경상북도 맑은 곳에 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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