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을 우리는 ‘후지카 산’이라 불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산꼭대기에 커다란 후지카 필름 옥외 광고판이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산 이름이 ‘안산’이었다는 걸 안 것은 이십대가 지나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우리가 그 후지카 산을 올랐던 이유는 ‘아지트’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우리에겐 아지트가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아서

우리들이 꿈꾸는 아지트는 이런 곳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안전하고도 쾌적한, 그러면서 서로간의 소통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곳. 너무 인적이 드물어서도 안됐다. 그렇다고 산책로나 등산로 바로 옆은 분주하니 그것도 안됐다.
우리는 적합한 아지트를 찾기 위해 산을 헤매고 다녔다. 어쩐지 불량해 보이는 중학생 오빠와 언니들이 있는 걸 보고 괜히 겁먹어 뛰어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는 적합해 보이는 장소를 마침내 발견했다. 우리는 낙엽을 끌어 모아 바닥에 뿌리고 꽃을 꺾어 주변을 장식했다. 그러곤 만족하여 돌아가려 하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산을 헤매고 다니며 발견한 그 장소는 다름 아닌 산책로 바로 옆 공간이었다. 우리가 꿈꾸었던 아지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괜히 시간 낭비만 했어.”
또래에 비해 조숙했던 희영이가 한마디 했다. 우리는 해가 지는 산을 터벅터벅 내려갔다.
겨울이 되자 다시금 우리는 아지트를 찾는데 분주해졌다. 아파트 놀이터는 이제 너무 추웠고 친구네 방에 오래 있자니 방해 세력이 너무 많았다. 친구의 동생이나 오빠, 친구 어머니의 눈총도 견디기 힘들었다.
친구는 자기네 연립주택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지하 보일러실이 어떠냐고 했다. 그곳은 매우 넓고 사람들도 잘 드나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기대를 품고 내려갔다. 그곳은 조금 어두웠지만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졌다.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보일러 때문에 매우 따뜻했다. 누군가 버려둔 의자와 책상도 있어서 앉아서 수다 떨기에도 적합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연탄보일러에서 새어나오는 가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슥거렸다. 지하 보일러실도 결국 우리의 아지트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그 해의 아지트 찾기는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나는 아지트에 대한 기대를 여전히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독서실을 다니던 나는, 그 곳의 휴게실을 친구와 나의 아지트로 활용했다. 물론 그것은 매우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장소였다. 선배들이 우르르 들어오면 친구와 난 별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했다. 너무 오래 앉아있노라면 어김없이 독서실 총무 아저씨가 달력 종이를 말아서는 이제 그만 들어가 공부나 하라며, 우리들의 머리를 콩콩 때렸다.

장소가 아닌 사람의 문제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아지트’를 난 줄곧 찾아왔던 것 같다. 대학 시절엔 그 곳이,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았던 어두컴컴한 커피숍이기도 했고 체육관 뒤쪽 볕 잘 들던 (무덤이 있던) 나무 밑이기도 했다. 때론 PC방이 되기도 하고 도서관이 되기도 했다.
최근엔 온라인 공간이 되어, 까페나 블로그가 되기도 하고 트위터, 페이스북 또는 카카오 톡 대화방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어렴풋이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든 아지트가 어쩔 수 없는 결함들로 인해 결국엔 실패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말이다.
세상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안전하고도 쾌적한, 그러면서 서로간의 소통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니까.
결국 우리들의 ‘공간’이 없어서 문제라기보다는, 그 공간에 있는 ‘우리들’이란, 안전하고 쾌적하게 누구의 영향이나 방해 없이 완벽한 소통을 이루어 갈 수 없는 존재니 말이다.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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