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소중한 물건 ①‘

편지야 원래 손으로 쓰는 것이지만, 인터넷으로 메일을 보내고 SNS로 연락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다보니 편지 쓸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손으로 쓴 편지는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 받으면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서 편지지에 손을 대어 보면 글씨를 쓰며 손이 지나간 자리에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
편지란 하고 싶은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간을 온기로 채우고, 행간을 위로로 채우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따뜻함과 위로가 꽉꽉 들어찬 하나의 공간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편지를 많이 썼고 또 더러는 답장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받은 편지로 인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거나 크게 위로받기도 했다.
사실, ‘위로’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라고, 인간들이 하는 위로는 굉장히 가벼운 것으로만 생각했던 내게 ‘위로’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하신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바로 이 ‘손편지’이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

2008년 겨울의 초입, 나는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중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준비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오랫동안 품었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스스로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입사 후 내가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으로 힘든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날도 역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합격자 발표가 났으니 인터넷을 확인해 보라고 얘기해주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합격자 명단을 보는데, 그 어디에도 내 이름이 없었다. 많지도 않은 명단에서 내 수험번호를 찾고 또 찾고. 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이 보이지 않자 ‘뭔가 문제가 생긴거야’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에는 내가 입사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도서관을 나와 코 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오자 점점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떨어지다니….’ 스스로를 과신한 탓에 절망감도 크게 밀려왔고, 나는 도서관 앞에서부터 집에 올 때까지 엉엉 울며 길을 걸었다.
학생들이 쳐다보는 것, 버스에 탄 할머니가 혀를 차며 걱정하는 것은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 세상이 무너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집에 겨우 도착해서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보일러를 켠 뒤 이불을 깔고 누웠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없어져 버릴 때까지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늘 나를 위해 중보해주시던 집사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곁에서 누구보다도 걱정해주시고 기도해주셨는데, 소식을 전하는 것이 도리겠다 싶어 메일을 썼다. 부모님께 한 통, 집사님께 한 통의 메일을 보낸 뒤,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크게 울지 못한 것을 마저 다 울고, 아주 오래 잤다.

사람을 통해 위로하시는 하나님

하룻밤을 꼬박 자고 일어나니 좀 괜찮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답답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누워 있다가 화장실을 가는데, 현관문 사이로 삐죽이 들어온 보라색 봉투가 보였다.
그 집사님께서 쓰신 편지였다. 봉투 안에는 글씨가 빼곡하게 쓰인 두 장의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사랑하는 진아에게’라는 글씨를 보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편지에 쓰인 내용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메일을 읽고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대신, 편지를 써 문 안으로 밀어 넣어주신 집사님의 행동 자체가, 그 편지 자체가 내게는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충분히 울고, 화내고, 따지기도 하라는 집사님의 말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보일러를 때고 있어도 춥게 느껴지던 집에 온기가 돌았다. 일어났을 때보다 한결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월요일에 집에 들어와서 다시 밖에 나가게 된 것은 4일 후, 그러니까 금요일이었다. TV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을 보냈다.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고, 그냥 계속 쉴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는 사이, 내가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것을 걱정하신 집사님은 어느 아침에는 반찬과 밥을 집 앞에 두고 가시기도 했고, 우리 집 문 밖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소한 소식들을 편지로 적어서 문 아래로 밀어주시기도 했다.
어린 참새처럼 음식을 받아먹고, 집 안으로 밀어 넣어 주신 위로의 손길을 느끼며 차츰 괜찮아졌다. 하나님께 따지게 될까봐 기도하지 못했던 나는, 따지고 화내다가 문득, 하나님이 나를 깊이 위로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집사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나를 회복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람들이 하는 위로가 일종의 ‘자기위안’이라고 평가절하 해왔던 나는 절망 속에서 내미는 따뜻한 손을 잡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위로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줄 알았던 나는 대학원에 들어와 상담학을 전공하고 있다. 잘 위로하지 못하고, 사람의 위로에 부정적이었던 내가 마음이 다친 이들을 위로해 보려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위로라는 것이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생각하고, 함께 울고 웃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조용히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내담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나는 그냥 도구가 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좋겠다. 아픈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손편지가 되어 인간은 손으로 편지를 쓰지만, 주님께서는 마음으로 쓰신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그런 상담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홍진아
그녀는 지금 또 다른 삶의 여정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진정한 위로자는 그 분 한 분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그저 옆에서 그 여정을 돕는 이로 살아가길 소망하는 그녀의 별명은 ‘위로의 여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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