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의 봄>은 과학에 기초한 기술이 초래한 환경오염의 가공할 결과를 대중에게 처음으로 강렬히 인식시킨 책이다.

▲ 미국 시사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중요인물 100명' 가운데 꼽히기도 한 레이첼 카슨.
카슨이 ‘침묵의 봄’을 내고 반세기가 흘렀지만, 사회적 상황은 당시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순간의 영광을 잃고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침묵의 봄’은 카슨이 책을 썼던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느 조용하고 평화로운 미국의 전원 마을, 봄이면 과수원의 푸른 밭 위로 흰 구름이 흘러가고 가을이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소나무를 배경으로 불타듯 단풍이 든 참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가 너울거린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에 갑자기 정적이 감돌기 시작한다. 소 떼와 양 떼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아침이면 교향곡처럼 울려 퍼지던 울새, 검정지빠귀, 산비둘기, 어치, 굴뚝새의 합창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들판과 숲과 습지엔 오직 불길한 침묵만이 감돌고, 이 마을의 봄은 마치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다.
이렇게 시작되는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이 출간 50주년을 맞았다. 소로의 ‘월든’, 레오폴드의 ‘모래군의 열두 달’과 함께 환경운동 분야의 고전이 된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62년. 아직 환경이란 말 자체가 낯설고 생소한 시대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카슨은 꼼꼼하게 수집한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화학적 합성물질들이 우리 주변의 동물들을 어떻게 죽이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어미 새의 몸에 축적된 DDT와 같은 살충제들이 어미 새가 낳는 알껍질을 얇게 만들고 더 나아가 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뿌렸던 살충제가 엉뚱하게도 새의 부화를 막고, 결국은 더 이상 새들이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런 카슨의 책은 출간 당시 엄청난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의 화공약품 산업은 친기업적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총동원해 카슨의 책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악의에 찬 반기업적 선전이며, 비과학적인 사이비 환경보호론자의 환상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자본주의 경제에 타격을 가하려는 공산주의자의 책동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펄펄 뛰는 미 화공약품 산업계와 달리 카슨의 이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과학자문위원회에 살충제 사용 실태에 대한 조사를 주문했고, 각 주 단위로 40여종이 넘는 살충제 규제법안이 제출되었다. 미국 농무부와 화학회사들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1964년 ‘야생보호법’이, 1969년에는 ‘환경정책법’이 미 의회를 통과했다. 한 권의 책이 말 그대로 ‘세상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56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침묵의 봄’을 비롯해 ‘해풍 아래서’, ‘우리 주변의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등 모두 네 권의 책을 썼다. 단 네 권의 책밖에 쓰지 않았지만, 이 조용하고 상냥했던 여 과학자는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시적 감수성을 결합한 글쓰기를 통해 자연의 진정한 의미와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내면의 눈을 독자들에게 열어주었다.
하지만 카슨이 ‘침묵의 봄’을 내고 반세기가 흘렀지만, 사회적 상황은 당시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자연의 개발을 통해 끝없는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자본의 욕망은 브레이크 없는 무한궤도를 달리고 있다. 그 폭력적인 힘 앞에서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순간의 영광을 잃고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침묵의 봄’은 카슨이 책을 썼던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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