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에 산책을 나섰습니다. 평소에 잘 걷지 않던 길로 갔습니다. 벌써 잎이 무성해진 플라타너스가 길 양쪽으로 서 있었습니다. 저녁햇살에 초록이 아름다웠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도 훔쳐보고 늘어선 가게의 간판도 구경하면서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멈칫했습니다. 길 건너 아담한 교회 건물에 엘씨디 형광으로 빛나고 있는 교회이름이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다사랑 교회’ 이게 무슨 뜻일까? 다 사랑한다는, 그러니까 모두를 사랑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차(茶)를 사랑한다는 뜻일까?
조금 더 걸어가는데 또 교회의 간판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건물 2층에 자리를 잡은 듯한 교회의 이름은 ‘주 찬양 교회’였습니다. 주를 찬양한다는 이 좋은 말을 보면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오랫동안 투덜거리며 지나쳤던 교회의 이러 저러한 이름들이 꾸역꾸역 떠올랐습니다.
물가에 심긴 교회, 은혜충만 교회, 하늘꿈 교회, 새하늘 교회, 성령 교회, 축복 교회, 치유 교회, 복받는 교회, 임마누엘 교회, 믿음 교회, 만민중앙 교회, 지구촌 교회, 높은뜻숭의 교회, 밀알 교회, 좋은목자 교회, 작은샘 교회….
교회 이름을 짓는 일은 이제 한국 기독교에서 유행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의 교회도 있고 소망의 교회도 있으니까, 믿음의 교회도 생깁니다. 크고 유명한 교회의 이름을 베끼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가 성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성장을 염두에 둔 듯 복과 은혜, 치유, 은사, 만사형통 등의 단어가 교회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본 가장 충격적인 교회 이름은 ‘하늘스크린 교회’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스크린 같은 교회라는 뜻일 겁니다.


교회는 하나

목사가 되려고 하는 이들은 신학교에서 교회의 특성에 대해 배웁니다. 그것은 ‘교회는 하나이요,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使徒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오랫동안 신조에 담아 지켜온 근본적인 고백입니다. 이 네 가지 특성 중에 첫째는 ‘교회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몸이 여러 개일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하나입니다.
교회 덩치가 크거나 작거나, 도시에 있거나 시골에 있거나, 잘 배운 사람들이 모였거나 못 배운 사람들이 모였거나 다 하나의 교회입니다. 또한 어느 지역에 있든지 다 하나의 교회입니다. 단지 몸이 하나이나 그 몸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여러 지체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본래 교회의 이름은 교회가 세워진 지역의 이름을 땄습니다. 고린도 교회, 갈라디아 교회, 안디옥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다 그런 이름입니다. 한국의 오래된 교회들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래교회, 정동교회, 새문안교회, 연동교회 등은 다 지역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한 동네에 교회가 두 개가 되면 제일교회, 제이교회 등으로 불렀습니다.
지역의 이름을 따지 않는 경우는 특별한 교회를 세울 때입니다.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교회, 선교100주년을 기념하는 교회 등이 그렇습니다. 가톨릭도 이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베드로 성당 등의 특별 성당을 제하면, 다 지역의 이름을 붙인 성당입니다. 명동에 있으니 명동성당입니다. 교회는 지역에 흩어져 있지만, 하나의 교회라는 고백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모독

오늘날 도시에는 한 동에 여러 개의 교회가 경쟁하듯 들어서 있으니, 동네 이름만으로는 구별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건물 없이 세를 든 교회들은 이사를 하게 되니, 지역이름을 고수하기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이름 짓기 유행은 그런 불가피한 사정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어느새 ‘하나의 교회’라는 고백이 사라지고 만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내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목사 세습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손수 개척해서 키운 회사 물려주듯,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줍니다. 옆 동네 교회가 문을 닫으면 대형 버스 돌려서 옆 동네 사람 다 실어옵니다. 교회는 어느새 회사를 닮아가고 목사 장로는 CEO나 회사 임원처럼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이미 경쟁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과 몸이 경쟁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모독입니다. 독신(瀆神)의 죄일지도 모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교회 이름 짓기, 어쩌면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생각에서 멀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이름이 필요할까요? 그리스도의 몸에 내 신학, 우리만의 사상을 걸어두어야 하는 걸까요?
혼란스러운 생각을 떨치고 나니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괜스런 생각을 했다 싶었습니다. 자기 자신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무슨 요란스러운 생각이냐 싶었습니다. 저녁의 어둠만큼 마음도 어두워졌습니다.


서진한
대한기독교서회 상무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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