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학교가 꽃동산이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캠퍼스 곳곳에 만개한 꽃들이 흐드러져 피어 있다. 스무 살 언저리의 젊음까지 가세하여 향기롭고 싱그런 공기가 가득하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깔깔 행복하게 웃으며 친구들끼리 추억을 만드는 학생들을 바라보니 나 역시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다. 선물같이 주어진 봄의 정경을 만끽하다 문득 장난스런 궁금증이 생겼다.
‘노란색과 핑크색, 참 튀는 색깔인데…. 도대체 개나리 옆에 진달래를 심을 작정을 한 최초의 인물은 누구였을까?’
비단 우리학교 교정만의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옆 학교를 가도, 공원을 가도 개나리 옆에는 꼭 진달래가 함께 피어 있다. 봄에 피는 꽃이 딱 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늘 보며 지내다보니 어느덧 봄꽃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저 둘이요, 또 그 둘이 늘 함께 피어있는 것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진보라 팬지꽃 옆에 빨간 사루비아가 같이 있어도 예쁘고, 연산홍 옆의 노란 민들레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튜울립은 또 어떤가? 사람이 입었으면 깜짝 놀랄 형형색색 원색들이 함께 있어도 화사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아, 그래서 ‘자연(自然)’인가? 자기 본연의 생명을 내뿜으며 생생하게 스스로를 빛내는 봄 생명들은 따로 보아도 예쁘고, 함께 보면 그 어우러짐이 신비롭다.

서로 자기 목소리만 내는 보수와 진보

그다지 감상적인 성품이 아닌 내가 굳이 이렇게 꽃타령을, 그것도 색깔 타령을 하는 것은 선거후유증 때문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정당인 민주통합당은 노란색을,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은 빨간색을 각 정당의 상징색깔로 내세워서 선거를 치러냈다. 국민투표 결과는 그야말로 ‘개나리 옆 진달래’처럼 서쪽에는 온통 노란색이요 경계를 선명하게 한 동쪽 지역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물론 당선된 후보의 정당색깔로 표시한 것이니 노란색 지역이라고 모두 민주당을 찍은 국민들만 살고 있는 것 아닐 터이고, 빨간색 지역이라고 온 지역민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닐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이 아닌, 확연히 나누어진 두 색깔로 나누어진 한반도 지도는 ‘개나리 옆 진달래’처럼 아름답지도, 어우러져보이지도 않았다. 인위(人爲),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이니 그렇지 싶다.
선거 공약을 보고 듣는 내내 난 참으로 궁금했다. 사람 사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고, 행복하고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기 위한 제안들이 그다지 차이날 일 아니건만, 어찌 한 정책도 겹치는 것이 없고, 한 쪽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른 한쪽에서 반대하거나 침묵하는지….
복지예산이 부족하다하니 고위공무원 봉급부터 내리자 하면 진보고 보수고 상관없이 표정이 매한가지일 터이다. 자기 것은 하나도 내어놓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향해서만 내어놓으라, 양보해라, 포기해라 목소리를 높이는 ‘노란색’, ‘빨간색’이라서 난 요 몇 달 새 그 두 색깔을 보기가 참으로 불편했었다.

남을 비난하기 전에…

정치판이라서 그래, 겨우 그리 위로하며 참아보려던 와중이었는데 요 며칠은 또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를 놓고 ‘용공’, ‘좌경’, ‘이단’ 운운하며 반대운동을 하는 결의대회 기사에 마음이 상했다.
‘국민일보’ 4월 17일자 신문에는 오른손을 불끈 쥐고 교회와 신앙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부산총회를 ‘막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보수진영 교계 지도자들의 사진이 실렸다. 종교간 대화 가운데 다원주의적 접근을 하는 WCC를 용인한다면 한국교회의 성장이 둔화되어 ‘제2의 유럽’처럼 될 것이라 경고하는 인용구를 읽으며, 난 또 다시 ‘다른 색깔의 불편한 공존’을 목격하게 되었다.
개나리가 예쁘다고 진달래를 다 뽑아 버릴 수 없는 일이고, 진달래가 좋다고 심어놓은 개나리를 다 죽일 수야 없는 일이다. 실은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옆 생명 해치는 법 없이 제 생명을 온전히 만개하여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바로 옆에 함께 있어도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보와 보수, 성장하려는 것과 지키려는 것! 이 둘은 생명의 양대 원리이다. 어느 하나를 척결하거나 어느 하나만 이 땅에 가득하여야 비로소 옳은 나라,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진보 없는 보수교회는 타락하기 쉽고 보수 없는 진보교회는 정체성을 상실하기 쉽다. 그럼에도 서로를 ‘척결’하기에 여념이 없어, 정작 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해야하는 진보도,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성찰해야하는 보수도 둘 다 제대로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 비난하기 전에 저마다 제 할 일을 아름답게 실천해간다면, 이 땅은 ‘개나리 옆 진달래’처럼 제법 어우러진 공동체적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 텐데….
개나리 천지이거나 진달래 천지인 것보다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어우러진 산천이 훨씬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서 배우며 우리도 ‘공존’의 원리를 깨달았으면 한다.

백소영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이다. 다양한 문화현상들을 그녀만의 따듯한 시각으로 분석한 강의와 글쓰기로 기독교세계관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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