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간의 상식선에서 이해되는 일들은 쉽게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자기가 생각하는 상식, 합리적인 선 밖으로 일이 일어나는 경우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나았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믿는다. 그러나 불치병이라 알고 있는 병에 걸렸던 사람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면 겉으론 믿는 척할지 모르나 속으로는 병원의 오진 혹은 잘못된 진단이라며 의심하곤 한다. 상식 밖의 일이기에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

그의 말을 기억한 이들

사람이 상식 밖의 일을 믿는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인간의 상식 밖의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그것들을 순순히 믿는다는 것은 신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그리 믿기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건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 어떤 지식으로도 납득되기 어렵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니며 3년을 함께 먹고, 자며 생활했다. 그 시간동안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수차례 말했다. 놀라운 사실은 제자들 중 단 한명도 예수님이 말한 부활을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기억하고 3일째되는 날, 무덤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의 말을 기억하고 그곳에 나와 기다리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두 여인이 무덥가를 찾아왔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가 아닌, 죽은 예수의 시신을 보러 온 것이다. 예수님의 무덥에서 장례 후 절차를 치르러 왔을 뿐, 이들 또한 부활하신 예수를 맞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
예수의 말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 27장 63절을 살펴보면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작 그 말을 기억해야 할 제자들은 잊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박해한 이들은 예수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동상이몽

제자들에게 예수는 자신들을 출세시켜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믿고 따랐다. 그러나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인 것이다. 예수의 죽음 앞에 제자들은 슬피 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망은 예수님의 그것과 같지 않았다.
당신의 소망은 무엇인가? 그대 지금 낙심하고 있는가? 그분과 다른 소망을 두고 있진 않은가? 이 부활의 날에 나의 소망이 아닌, 그 분의 소망을 품길 바란다.
성령의 도움 없이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성령이 오실 때 비로소 그동안 들었던 말씀이 기억나면서 그 말씀이 몸으로 실현된다. 우리의 연약한 현실을 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절망하지는 말자. 성령이 함께 하시면 말씀대로 행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인간의 이성을 뛰어 넘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 합리적인 사고의 벽, 상식의 벽을 넘는 것은 결국 성령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그가 하시도록 하라.

조현삼
‘감자탕교회’로 알려진 서울광염교회 목사이며 재난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재빨리 달려가는 한국교회연합봉사단의 단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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