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그리는 아빠

아빠의 그림 소재는 다양합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식당에서 마주친 손님, 때로는 케이크나 애완동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엄마와 제 얼굴은 그려주지 않습니다. 완성된 그림에 “눈이 이상하다!” “볼이 뚱뚱하다!” “나 아닌 것 같다!” 등등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림 속 여인은 엄마가 아닙니다. 드라마 등장인물인지 어떤 여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여인의 머리 스타일입니다. 아빠는 이런 머리를 좋아하십니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는 질색이고, 긴 생머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깨 정도 길이에 적당한 컬이 들어간 머리를 최고로 여깁니다.

약 10년 전부터 엄마가 미용실에 다녀온 날이면 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일명 ‘라면머리’는 아니더라도 누가 봐도 ‘뽀글거린다’고 생각할만한 헤어스타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저는 같은 여자로서 “돈 주고 하라고 해도 못할 머리”라고 합니다. 다소 무뚝뚝한 남동생은 “어머니, 시골에 가실 계획은 없나요? 없으면 만들어 보세요”라며 고향 방문을 권유합니다. 압권은 아빠입니다. “당분간 벽 보고 자야겠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가족들이 그러던 말던, 엄마는 박장대소를 하고는 꿋꿋하게 주장합니다.

“이런 파마가 오래가! 또 롤빗으로 쓱 빗어주면 스타일도 잘 나오고! 외출할 때는 드라이도 하고 나가니까 문제없어! 교회에서나 동네에서 다들 파마 잘 됐다고 어디서 했냐고 묻곤 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말이지 엄마의 말은 순 ‘뻥’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출산 후 6개월이 지나면 파마를 해도 괜찮다고 하길래 2년은 족히 길러온 머리를 파마하러 단골미용실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미용실 언니가 보여주는 화보는 볼 것도 없이 냉큼 “손질하기 쉬운 파마로 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머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생 그렇게 뽀글거리는 머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완성된 머리를 보며 제법 흡족해진 전 “이 파마 이름은 뭔가요?”라고 미용실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파마는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손님이 원하는 롤로 말아준 “그냥 파마”라고….

아빠는 여전히 ‘그냥 파마’의 매력을 모릅니다. 전 이제 엄마편이 되었는데 말이죠.

“아빠, 사진 속 머리를 한 여인을 만나고 싶으면 엄마에게 근사한데서 만나자고 하세요. 집에서는 뽀글머리가 정말 편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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