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이 잘 오는 커피’
제프 에릭슨 미국 카마노 아일랜드 커피(www.camanoislandcoffee.com) 대표는 자신의 커피를 이렇게 소개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또 뭔가?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궤변도, 거짓말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해답은 남미와 아시아 지역의 빈농들에게 있다.

커피 농가 자립 지원

카마노 커피는 제프 에릭슨 대표가 운영하는 ‘카마노 아일랜드 커피 로스터스’라는 회사를 통해 전 세계 32개국으로 수출되는 공정무역 커피다. 세계 최대 커피 무역 단체인 미국스페셜커피협회(SCAA, Specialty Association of America)로부터 상위 1퍼센트에 해당하는 최고 등급의 아라비카 커피로 인정을 받을 만큼 높은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카포퓨란이나 엔도설판 같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해발 900미터 이상의 고지에서 생산한 100퍼센트 유기농 커피로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인증을 받았고, ‘그늘재배농법’을 사용하여 산도가 낮고 카페인이 적어 탁월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
품질이 뛰어난 유기농 커피지만, 카마노 커피의 핵심은 아무래도 ‘공정무역 커피’라는 데 있다. 공정무역의 요지는 커피를 생산한 커피 농가에 제대로 된 값을 지불한다는 데 있지만, 카마노 아일랜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로 카마노 커피 한 봉지가 팔릴 때마다 커피 생산 농가에 추가로 1달러씩을 기부하는 것.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는 커피 생산 농가에 단순히 제 값을 쳐준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빈곤의 사슬을 끊고 자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카마노 커피는 공정한 거래를 통해 커피 생산 농가가 다른 커피 회사와 거래할 때보다 75퍼센트 이상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또한 에그로스 인터내셔널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커피 생산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에그로스 인터내셔널은 지난 82년 미국 시애틀의 변호사 스킵 리에 의해 설립된 단체로 제3세계 농민들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중남미 지역뿐만 아니라 제3세계 42개 마을을 지원하고 있으며 모두 2만4천여 명의 커피 농민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단순한 철학

제프 에릭슨 대표는 이러한 활동이 바로 카마노 커피의 설립 이념이라고 설명했다.
“카마노 커피는 단순한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환경을 고려하는 행위와 공정한 구매와 같은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우리는 커피를 통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밤에 잠이 잘 오는 커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카마노 커피를 산 사람들은 단순히 커피만을 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릭슨 대표의 ‘밤에 잠이 잘 오는 커피’란 말은 카마노 커피를 마시면 정말 밤에 잠이 잘 온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카마노 커피가 갖고 있는 신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커피 한 봉지를 사는 과정 속에 제3세계 가난한 커피 농부들의 삶을 바꾸고, 가난의 대물림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깨뜨리고, 이들이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커피를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행위를 통해 ‘단잠’을 잘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비즈니스 선교

에릭슨 대표가 이처럼 독특한 사업 철학을 갖게 된 데에는 그의 개인적 이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갔습니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하면서 나의 소명은 신학이 아니라 비즈니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하고는 사업 쪽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때는 사역과 비즈니스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에 몰입하면서 신학을 잃어버렸고, 하나님마저 잃어버렸습니다. 헌금도 많이 하고 선교사를 후원하기도 했지만 사역에 동참하지는 않았습니다.”
에릭슨 대표는 사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쉽게 다양한 인쇄물들을 프린트하고 제본할 수 있는 ‘페덱스 킨코스’의 토대를 만든 사람도 바로 그였다. 하지만 성공의 정점에서 그는 간암 진단을 받게 된다. 병원에서는 6개월이란 시한부 삶을 선고했고 그는 모든 사업을 접고 칩거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데 절망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내게 남은 마지막 6개월의 시간을 고향인 워싱턴 주에서 보내기로 하고 가족들과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육적인 건강도 함께 회복되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에릭슨 대표는 커피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사업과 선교를 동시에 진행하는 비즈니스 선교였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 공정무역이었다. 일반 커피에 비해 생산 기간도 길고 생산량도 적지만 유기농에 수림재배로 정말 품질이 좋은 커피를 생산하고, 커피를 생산한 농민들에게는 생산에 대한 값을 제대로 지불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커피 생산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공급하고 장기간에 걸쳐 이들이 그 토지를 구매하게 함으로써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 그것은 선교란 이름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그 중심에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도우라’는 그리스도의 계명과 이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큰 사명을 동시에 이뤄가는 한 방법이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선교지에서 많이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신앙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현지인들에게 물량 공세를 퍼부은 다음 신앙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신앙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것입니다. 함께 느끼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계가 맺어지면 그들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의 삶은 하나님과 나와의 계산’이라고 강조하는 에릭슨 대표는 지난 2월말 며칠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에 카마노 커피를 보급하고 스무디파우더와 같은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다. 카마노 커피는 한국지사(대표 스티브 김 목사·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 719 성원상떼빌 105동 119호)를 최근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나서고 있다. 공정무역을 통해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카마노 커피가 에릭슨 대표의 말처럼 ‘잠이 잘 오는 커피의 씨앗’을 세상 곳곳에 뿌려주길 기대해본다.


김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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