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기운이 생명을 움틀 준비를 마치니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아무리 꽃샘추위가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며 방해해도, 사순절이 지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은 오고야 맙니다. 며칠 후면 필경 죽은 듯 있던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날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 마음까지 불편한 음습한 터널에서도 행복을 맛봅니다. 그날을 꿈꾸니까요.
사순절을 지나면서 한마디 말씀에 붙잡혀 있습니다. 각 사람이 해결해야할 숙제입니다. 이것만 해결된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진동하는 향기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고야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행함 없는 믿음은...” (야고보서 2장26절). 끊임없이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누구 한사람의 마음에 들리는 소리가 아니겠지요. 문 밖에 서서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성령의 탄식 아니겠습니까. ‘나’ 자신을 향한 주님의 음성이고, 우리 가정 교회 교단 단체... 나아가서는 선한 구호를 내걸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중엄한 손가락질 같습니다.
특정 집단이나 특정인을 향해 말의 화살을 겨눌 필요도 없겠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저절로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오늘 한국교회에 넘쳐나는 교인들은 이런 의미로 조화(造花)같은 모양 아니겠습니까! 생명력을 회복하여 향기 진동할 그날을 꿈꾸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행함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오늘도 척박한 땅을 갈아엎고 거기에 씨를 뿌립니다. 말라죽어가는 연약한 나무에 물을 주고 또 사랑으로 가꿉니다.
탈북인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 지금 이 주제가 화두입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토론도 중요하고 정책입안도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급하게 그 불안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우리의 이웃을 구출해야 할 행동이 필요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임하고 계심을 어찌 부인하겠습니까. 아모스서에서 선지자를 통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 “그런데도 너희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북한식량악화로 90년대 중반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탈북행렬은 남한으로 온 경우만 2만명이 넘습니다. 이곳에 와 있는 분들을 돌보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지금 중국 땅에서 북송될까 불안에 떨고 있을 그분들을 생각합니다. 무언가 해야지요.
꽃샘추위에도 거리에 모여 그들을 구출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의 참여가 아름답습니다.
지구촌이 하나인 세상에서, 더 이상 '우리나라'라는 틀에 갇혀 '이웃'을 잊고 사는, 아니 모르고사는 것 같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지요.


‘나’를 깨우는 소리를 듣고 이제 일어섭시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