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들’의 기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불운한 한 사람이 그 길에서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 옷조차 벗겨진 그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무력한 익명의 사람일 따름입니다. 누군가가 발견하고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 황량한 광야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마침 그 현장 곁을 제사장 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걷던 길인데 그 끔찍한 폭력의 현장을 보게 되었으니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는 마치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딴 곳을 보며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고 말합니다. 얼마 후 한 레위인도 그 현장을 지나갔지만 그도 역시 눈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 가련한 사내의 생은 그렇게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청중들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충격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며 그가 속한 나라, 계급, 인종, 종교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부도덕한 일이고 반인륜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의 등장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청중들의 일그러진 마음을 폭로하고 계십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비웃고 있었지만 그들 또한 자기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다를 바 없습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 또한 그들을 암암리에 무시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전혀 다른 동기에서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강도만난 사람에게 다가간 것은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측은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믿음의 고백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만 권의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교리를 암송하거나 종교집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내적 변화입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 누군가의 불행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 그래서 그의 앞에 멈춰 서고, 그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쓸 때 비로소 우리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네가 바로 이웃이다

당황스러워하는 청중들의 반응과 관계없이 예수님은 율법학자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주님은 여기서 ‘이웃이 누구냐?’는 본래의 질문을 ‘누가 이웃이 되어 준 것이냐?’는 질문으로 돌려놓고 계십니다. 율법학자는 마지못해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주님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나를 향한 그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일까지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만입니다. 물론 누군가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도 있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비유를 묵상하면서 저는 제가 바로 제사장이요 레위인임을 절감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강도만나 피를 흘리고 있는 이들이 많은 데,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나는 나대로의 역할이 있다는 핑계로 그들을 보면서도 피하여 지나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 곁에 다가서는 이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많아서, 여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적 뜨거움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첫 걸음을 옮겨야 할 때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물 위를 걸은 베드로 이야기를 하면서 “만약 그가 물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믿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나를 따르라>, 대한기독교서회, 60쪽)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이웃이 되어 주는 일에는 경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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