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의 겨울은 매섭다. 산이 높고 물이 깊어 한 겨울의 추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춥다보니 ‘난방’은 단양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양 시내도 시내려니와 드문드문 산 속에 떨어져 있는 몇몇 농가들은 그야말로 한겨울의 칼바람을 보일러의 온기에 의존해 버텨낸다. 더구나 젊은이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70~80세를 훌쩍 넘긴 노인들만 서로 등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산간마을에서 보일러가 한 번 고장이라도 나면 이는 ‘치명적 재난’이다.

유명인사 ‘보일러 사장님’

강성인(62·매포순복음교회)씨는 단양에서는 유명인사다. ‘보일러 사장님’으로 통하는 강씨는 지난 13년 동안 단양 인근의 수많은 독거노인들과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집을 돌며 무료로 보일러를 수리해주거나 수리가 어려운 경우에는 아예 보일러 자체를 무상으로 교체해주곤 했다. 그의 이런 선행이 주민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이제 그는 단양에서는 ‘보일러 사장님’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13년 전, 그가 가방 하나 달랑 든 채 단양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그는 직업군인이었다. 육군3사관학교 준사관1기 출신인 그는 육군 정보병과 준위였다. 일반 사회로 말하자면 군대 형사였다. 군 내부의 범죄를 수사하거나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그런 그가 ‘제2의 인생’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경기도 연천의 두 번에 걸친 수해 때문. 연천의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했던 그는 두 번의 수해로 모든 것을 잃었다. 옥상까지 덮어버린 수해는 그의 생활기반을 붕괴시켰고, 정년을 3년 남짓 남겨논 그는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그러고는 보일러 수리점과 전파사를 차렸다. 가전제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독학으로 기술을 익혔고 퇴직을 할 즈음에는 전기공사 면허까지 딴 상태였다.

아버지의 유산

그렇게 시작된 보일러 수리점과 전파사는 결국 부도로 1막을 내렸다. 그 와중에 가정도 붕괴되었다. 그는 남은 재산을 수습해 모두 아이들에게 안겨주고 본인은 간단한 옷가지와 생필품만을 챙겨 단양으로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자리를 잡고 한숨 돌리게 되니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보일러를 수리해주러 이 산골, 저 산골로 돌아다니다보니 홀로 사는 독거노인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더군요. 갑자기 연천에서 수해 당했을 때 달려와 내 일처럼 도와주던 자원봉사자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나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처음에는 고장난 보일러를 수리해주러 갔다가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수리비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홀로 사는 독거노인의 집에는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해서 갔는데, 살펴보니 보일러가 오래돼서 수리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냥 새 보일러 교체해주고 돌아왔다. 어떤 때는 단순히 보일러만 갈아주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전기 설비나 미장일까지 다 해주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강씨의 이야기가 단양군민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강씨는 하지만 이런 일들에 대해 스스로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어려운 삶을 살았고, 같은 처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눈에 밟혀서 그냥 돌아서지를 못하는 것뿐이다. 굳이 신앙적인 표현을 빌자면, 굶주리는 이웃에게 떡 하나 주는 일이다. 그렇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물론,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은 듭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많이 도왔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뿌린 작은 밀알이 아들에게서 또 다른 밀알로 성장했다. 남을 도움으로써 스스로 행복해지는 비밀이 감춰진 유산이 되어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졌다. 단양의 ‘행복한 보일러공’ 강성인씨는 그렇게 풍요로운 ‘제2의 인생’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김지홍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