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회갑에 문인화 작품전 연 강인엽 작가

"젊음을 바쳐 일한 학교에서 명퇴하면서, 여러 가지를 경험해 봤어요. 지점토공예도 해보고, 바구니 만들기도 해보고,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해보고...그러다 서예를 배우러 간 문화센터에서 사군자를 접하게 됐는데. 거기서 梅(덧말:매)蘭(덧말:난)菊(덧말:국)竹(덧말:죽)에 매료되어 문인화를 접하고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강인엽씨 전시회 작품중 하나.

 

병약함을 딛고 선 재능개발

평생 위장이 약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병약함에 늘 마음이 쓰인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속쓰림에 시달려야 하는 지병이 있다. 그럼에도 교장선생님 딸로 태어난 그는 교단을 지키는 게 천직이라 여기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꿈을 키우고 가꾸는 데 젊음을 바쳤다. 뿐만 아니라, 매사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포기할 줄 모른다. 건강 때문에 사그라지는가 하면 불씨가 남아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그에게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사군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 초나라 조나라 위나라 제후들의 덕과 인품을 흠모하여 그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지요. 문인화의 핵심인 사군자를 치다가, 문인화가 평민들의 질펀한 삶이 아니라 사대부들의 깐깐한 인품과 학식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그린다'고 하지 않고 '친다'고 합니다. 그만큼 필선의 일필휘지를 통해 운기 있고 골기 넘치는, 필 속에 기운 생동함을 나타내는 거니까, 매료될 수밖에요." 
건강이 받쳐주지 않아 고통 중에도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나오기까지 화선지와 씨름했다. 하나님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느니 죽는 게 낫습니다...하는 절규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으며 날마다 바라봅니다. 내 주여 내 발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찬송하며 견뎌냈다. 기나긴 시간, 여러번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희열에 들뜨기도 했다.
이렇게 필력을 쌓는동안 십 수년 각고의 애씀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그런 필선이 나올 수 없다. 그가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입학했을 때, 모두들 축하보다는 놀라움과 우려가 컸다. 그의 건강상태가 지탱해 주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우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동안, 강인엽 선생이 받은 상은 헤아릴 수가 없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부문 입선에서부터, 경기미술대전 단원미술제 젖국휘호대회 전라북도 미전 개천예술제 경남 서예대전 경남미술대전 대한민국 서예대전 대한민국 현대서예문인화대전 대한민국 여성환경미술전...이런 많은 곳에서 그는 특선에서부터 입선까지 수없는 상을 받았다.  365일 아프지 않은 날이 드문 그에게 이 괴력과도 같은 끈질긴 힘은 어디서 온 걸까.

 


기독교문화와의 만남 시도

그가 꼭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던 것은, 비전공자로서 제2의 인생으로 이 길을 걸으며 세밀하고 정교한 화필을 키우는 것과 함께 문기(文氣)를 키우기 위함이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소재의 상징성'이었다.
"문인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해요. 그림 속에 소망을 담아 성경말씀과 함께 표현하면 우리 전통 예술과 기독교와의 접목도 가능 하다고 보았어요. 시도해 보았더니 기독교문화의 한 장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문인화에서는 주로 유교나 불교의 표현이 많은데 여기서 성경말씀을 대하니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정말 성경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났도다"(요한일서4장7절)은 특히 그의 애송성구란다.
작품전시회에서 만난 강인엽 선생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한다. 이 꿈이 나비효과가 되길 기도한다고.
그의 꿈은 이렇다. 아니, 이미 꿈은 그의 작품에서 실현되고 있다. 그의 문인화 작품 속에 기독교문화를 접목시키는 중이다.
"우리 전통문화가 불교와 도교 노자사상 영향을 받고 있잖아요. 문인화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는 시대에 어울리고 또 기독교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문인화를 그리고 싶어 詩 부분을 성경구절로 표현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의 상징성과 어울리는 성경말씀을 찾느라 더욱 말씀에 가까워지고, 그런 찬송을 찾느라 찬송과 가까워진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부채(합죽선)에도 그림과 성구를 인용하여 작품을 만들곤 한다. 그리스도인들과 전통문화와의 간격을 좀 좁혀 보고싶은 꿈 때문이다.

 

 

강인엽씨 전시회 작품중 하나.

 


‘꿈은 이루어진다’

그는 지금도 꿈을 꾸고있다. 文·史·哲과 詩·書·畵에 뛰어난 문인화가가 되어, 그 재능으로 신앙고백적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는 헌책방을 뒤져 선인들의 지식과 정신을 함양하면서 창의적인 문인화 작업에 정진하고 있다.
뒤늦은 학도를 만남에 반신반의하던 스승도 동급생도, 친구도 가족까지도 강인엽의 열정과 끈질김에 두 손을 다 들었다. 경외심, 자부심, 자랑이 되었다.

그가 꿈꾸는 꿈의 나비효과

"시·서·화에 재능을 가진 신앙인 모임을 만들어 재능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저는 제게 주신 재능이 주님 사역에 쓰임받기를 꿈꿉니다. 준비된 자를 사용하실 거니까요. 어느 작은 교회가 전도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저희를 청하면 가서 그림이나 글씨 쓰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전도의 도구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부채도 만들어주고, 가훈도 써주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도하는데 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늦깎이 작가된 저는 선한 도구가 되고 싶어요. 물론 기금 만들기도 할 수 있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같이 의논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하겠습니다."
강 작가가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은 어린시절의 추억 덕분이라 한다.
초등학교 3학년, 학교 선생님 손잡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심장판막증으로 병약한 엄마는 심부름시킬 사람이 없어 자녀들이 교회가는 것을 싫어하실 정도였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엄마도 옆집 사모님을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다. 작가가 고등학교 다닐 즈음, 초보신자인 엄마가 교회의 기도원집회에 따라 나섰다가 치유의 은혜를 입었다 그 기도원 사건 이후로 건강이 너무 좋아지셔서 꺼질 것 같던 등불이 살아나셨고,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사신다. 70세에는 의술의 발달로 심장 판박도 만들어 붙이고 이 집안의 기도대장이 되셨다.
이런 신앙고백적 추억이 있는 그의 어린 시절 덕분에 신앙을 지킬 수 있었기에, 전도에 쓰임받기를 더욱 갈망한다.
그가 꼭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던 것은, 비전공자로서 제2의 인생으로 이 길을 걸으며 세밀하고 정교한 화필을 키우는 것과 함께 문기(文氣)를 키우기 위함이었다.

 

 
강인엽씨 전시회 작품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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