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상실감을 동반한 단순한 감정이지만 우울은 병리적 감정

분노의 감정이 우울함으로 바뀌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프로이트는 타인을 향한 미움과 분노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경향을 우울증 환자의 특징으로 보았다. 감정의 화살이 상대를 향하면 분노이고, 자신을 향하면 우울이라고 하겠다.
그럼 슬픔과 우울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감정은 단순히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분명히 서로 다른 감정이다. 닮았지만 다르다. 슬픔은 상실의 느낌이며 실망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반면 우울은 병리적(病理的) 슬픔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이 과하면 우울이 된다는 시각은 두 감정 사이의 뚜렷한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병으로서의 우울을 앓아본 사람들은 평상시에 경험했던 ‘지독한 슬픔’과 자신이 겪었던 우울함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정상적인 감정으로 경험되고, 자신이 조절할 수 있으며, 다른 병리적 현상(예를 들면 우울증에서는 감정의 변화만이 아닌 생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 신체적 기능의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단순한 슬픔이다. 우울은 이러한 슬픔이 병리적으로 변질된 감정이다.

예리 씨와 진주 씨의 경우
예리 씨와 진주 씨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갑내기 여직원이고, 최근 둘 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예리 씨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 친구가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꿈꾸는 삶의 방향이 예리 씨와 달라서 그렇다는, 뚱딴지같은 이별 선언이 기막히기만 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무슨 꿍꿍이 속인지 남자 친구는 전화번호까지 바꾸고 연락 두절이 되었다.
치밀던 화가 가라앉기도 전에 예리 씨의 생활에는 슬픔이 찾아왔다. 밥을 먹다가 울고,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울고,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울었다. 유행가 가사가 그렇게 가슴을 파고들어 온 적도 없었다.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엉엉 울었다. 너무나 슬퍼서 영원히 울음이 그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시간이 치유하지 못하는 상처는 없었다. 예리 씨는 서서히 자신의 생활을 추스르고 일상적인 삶으로 복귀했다.
진주 씨도 일방적인 이별 선언을 당한 건 똑같았다. 그런데 진주 씨에게는 이번 이별이 낯설지 않았다. 진주 씨는 우울증의 경력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건 진주 씨에게 유달리 불친절한 세상에서 당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진주 씨는 슬픔 같은 감정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진주 씨 주변의 생활이 일순간에 흑백 영상으로 바뀐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가슴 속이 텅 빈 느낌이 하루 종일 지속되었고, 무얼 해도 재미가 없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고, 겨우 잠이 들어도 밤새 꿈속에서 헤매다가 눈을 뜨면 이른 새벽이었다. 입맛이 없어져서 잘 먹지 못하니까 체중이 자꾸 빠졌다. 일을 하려고 해도 머릿속이 멍하고,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서 멍청하게 앉아있기 일쑤였다. 주말 내내 쉬어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실수가 잦아지니 지적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진주 씨는 점점 자신감을 잃으면서, ‘그래, 그가 떠나간 건 당연한 일이야.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겠어? 난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한심한 인간인걸’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시간이 흘러도 진주 씨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고, 빼빼 마르는 진주 씨를 보다 못한 가족들의 손에 끌려 병원을 찾았다. 진주 씨는 우울증 재발 진단을 받고 치료를 권유 받았다.

상실감이 핵심
우울과 슬픔에서 핵심은 상실감이다. 많은 경우 상실은 손에 잡히는 현실이다. 예리 씨와 진주 씨는 남자 친구를 잃었다. 그렇지만 슬픔을 위해 꼭 큰 상실이 필요한 건 아니다. 즐겨 쓰던 볼펜을 잃어버리면 문구점에 가서 똑같은 걸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속이 상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상실 뒤에는 추상적인 상실도 있다. 둘 모두 ‘사랑’을 잃었으며, 각자의 남자 친구와 약속했던 ‘미래’를 잃었다. 상실의 대상에게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어느 정도로 깊이 내 마음을 주었는지(이를 ‘애착’으로 볼 수 있다)에 따라 상실로 인한 슬픔은 정도가 달라진다. 소개 받아서 만난 지 불과 한 달 밖에 안 된 상대라면 속상하겠지만 깊은 슬픔까지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로 만나다가 졸업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해 서로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고, 내년에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사이라면 슬픔의 정도는 커진다. 만일 남자 친구가 아니라 결혼해서 10년을 같이 살던 사이였다면 고통의 강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올라간다. 이혼을 하면 결혼한 부인이라는 지위의 상실도 있고, 자신이 꿈꾸던 삶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는 가치체계의 상실도 있기 때문이다.
상실은 간혹 실제가 아니라 상상 속의 상실인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아무 이유 없이 헤어지자고 했던 남자 친구가 몇 달 뒤에 다시 돌아와서 예리 씨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자기 가정에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혹시라도 예리 씨에게 피해를 줄까봐 헤어지자고 했던 거라고 고백한다면 남자 친구의 마음이 떠나간 것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을 알기 전까지 예리 씨 머릿속에 그려진 남자 친구의 모습은 새로운 여자에 눈이 멀어버린, 혹은 자신에게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사랑이 식어버린 남자의 모습일 것이다. 남자 친구의 빈  자리는 실제 상실이지만, 그의 사랑이 떠나갔다는 건 상상 속의 상실이 되는 셈이다.
상실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슬픔과 우울은 상실이라는 한 마디 말만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들 감정의 뿌리에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지 앞으로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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