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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안의 나
문지현의 감정이 꽃피는 순간
[116호] 2011년 10월 09일 (일) 문지현 @

불처럼 솟구치는 분노는 듣기만 해도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런 감정이 내 삶 속에 없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병적으로 극대화되지 않은 상태의 분노는 일상에서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스스로 소심해서 화도 잘 못 내는 남자라고 생각하는 규식 씨의 퇴근길을 따라가 보자. 오늘따라 퇴근길 버스 정류장에는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겨우 버스에 타는데, 아주머니 한 사람이 규식 씨 앞으로 날쌔게 새치기를 해서 끼어든다. 새치기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지만, 아주머니가 든 짐가방이 규식 씨의 무릎을 정통으로 가격하면서 얼얼하게 통증을 느끼니 분노가 확 치밀었다. 한참 뒤에 서 있던 아저씨 한 분이 “거 앞에 질서 좀 지켜요! 아줌마!”하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규식 씨 속이 대신 후련해지려고 한다. 아주머니는 못 들은 체 하면서 날쌔게 버스에 올라타,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밀면서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미안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는 모습에 짜증이 끓어올랐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뻘의 아주머니에게 대놓고 욕할 수는 없는 법. 대신 규식 씨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으로 일부러 아주머니의 뒤통수를 툭 쳤다. 아주머니가 약간 인상을 찡그리면서 뒤를 돌아본다. 규식 씨는 상당히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면서 “죄송합니다” 한다. 적당한 분노 표현도 됐고, ‘아주머니, 저는 적어도 잘못하면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아주머니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거든요?’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되었기에 얄팍한 걸 알면서도 나름 기분이 좋아졌다.
힘든 몸을 끌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아직 안 들어오셨다. 어머니 얼굴색이 좋지 않다. “너네 아버지, 오늘 점심 약속 있어서 나갔는데 여태 안 오신다. 계속 전화도 안 받고. 아무래도 다시 술버릇이 시작됐나 보다.” 규식 씨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으로 입원까지 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다시는 입에 술을 대지 않겠노라고 맹세를 한 게 도대체 몇 번인지 모른다. 술 마시지 말라고 걱정을 앞세우는 어머니에게 바가지 긁지 말라며 신경질을 내고는 나가셨단다. 어머니와 둘이 저녁 식사를 하는데 입맛이 없다. 예상대로 밤이 깊어질 때까지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번번이 깨어지는 아버지의 약속에, 아버지의 문제에 대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절망에, 저런 사람과 결혼을 해서 내 삶에 평생 이런 영향을 미치게 만든 어머니의 미련함에 화가 났다.
화가 나니 잠도 오지 않았다. 불을 끄고 누운 채로 자신을 돌아본다. 규식 씨는 아버지의 문제가 너무 싫어서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신다. 그러나 술 문제를 제외한다면 아버지와 자신은 거의 닮은꼴이다. 자기 인생에서 뒷짐을 지고 물러난 채, 구경꾼처럼 적당히 묻혀 가며 살고 있는 모습.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이제 자신을 향해 방향을 돌린다. ‘이규식, 너도 이제 서른이 넘었잖아.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거니?’
새벽이 되어서야 잘 걷지도 못하는 채 비틀거리면서 나타난 아버지에게 규식 씨는 차가운 한 마디를 던졌다. “아버지, 언제까지 그러고 사실 거예요?” 대답할 상태가 아닌 아버지는 작은방으로 사라진다. 안방에서는 어머니가 조용히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규식 씨는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가슴 속에서 불이 붙는 것 같아서 책상 위에 놓여있던 책 몇 권을 바닥에 확 밀어 던졌다. 그러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부터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규식 씨의 모습은 다양한 형태의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분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분노하는 아들’이 규식 씨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처럼 보인다.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시점이 조금씩 늦어진다고는 해도 나이 서른은 적지 않은 나이이다. 그런데도 규식 씨는 자기 자리를 가정 안 아들의 자리로만 국한해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규식 씨의 분노가 세상에 드러나는 모습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시종일관 에둘러가는 형태의 분노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은 발목에 와서 부서지는 약한 파도처럼 출렁이는 가벼운 분노만 보이고 있지만, 그의 생애 초기에는 미처 드러나지 못한 분노의 너울이 가득했다. 어려서부터 규식 씨는 술로 인해 망가지는 아버지를 지켜보아야 했다. 어린 그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이다. 그런 사람이 형편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불안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규식 씨의 어머니. 지금도 어머니를 미련하다 생각하면서 화를 내지만, 규식 씨는 어머니 편이 될 수밖에 없다. 어머니에게는 자신 밖에 없으니까. 규식 씨는 너무 일찍부터 집안의 감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한 자신의 분노를 조율하고, 표현되지 못하는 어머니의 분노를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던 규식 씨에게 건강하게 드러나는 분노란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분노가 드러나면 그의 가정은 그 길로 무너져 내릴 테니까.
그러면 이러한 분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주머니의 경우 규식 씨가 찾아낸 분노의 해결법(가방으로 아주머니 뒤통수 가격하기)은 조금은 유치하지만 그에게는 나름대로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다르다. 오늘 하루 술을 마신 아버지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삶의 과정 동안 계속 쌓인 분노가 있었으니까. 어쩌면 규식 씨의 문제는 제대로 화를 내는 과정을 통해서만 달라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제대로’가 중요하다.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분노를 발하다 말면 아버지의 문제는 그냥 아버지의 문제로 남을 것이고, 과도하게 분노한다면 그 새벽에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화를 낸다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규식 씨 자신의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아들’의 자리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규식 씨가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적절한 분노를 통해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 그리고 자신의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기회가 될 거란 기대도 된다.
하나 더. 아버지를 향한 분노에서 파생된, 자기를 돌아보는 규식 씨의 분노는 그가 현재에 머물러있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현실에 대한 분노가 없다면 변화와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되는 대로 매일을 흘려버리게 될 뿐이다. 꼭 분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정도가 적절하다면 분노를 두 팔 벌려 환영할 필요가 있다. 분노의 에너지는 강력한 변화의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지현 |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미소의원 원장이다. 월간 <건강과 생명> <새벽나라>에 상담 코너를 집필하고, <십대답게 살아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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