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범진이의 심장은 백 미터 전력질주를 한 사람처럼 뛴다. 그래서 몇 분만 걸어도 바닥에 누워 “헤엑 헤엑 헤엑” 하고 숨을 몰아쉰다. 슬프게도 그 작은 심장은 서서히 멈춰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심장을 둘러싼 근육이 점점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흐느끼는 소리가 병원 복도를 타고 퍼져나간다. 그 소리가 병원의 모든 신음소리를 잠재운 듯, 흐느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 여자가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무슨 큰 죄를 지었는지 남자의 바지자락을 꼭 쥐고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알아듣기도 힘들 만큼 울먹이며 같은 말을 되뇌고 있었다.
“여보,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우리 아기… 나 때문에 아파요.”

5년 전, 한 아기가 8개월 만에 태어났다. 조산이었지만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두 달 후,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아기 심장소리가 이상하네요. 어서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세요.”
범진이는 태어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대동맥 판막 이상을 포함하여 4개의 병을 진단받았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잡고 하염없이 병원 복도에서 울었다. 자기가 아기를 아프게 만들었다고 하면서…. 이 죄책감은 오랜 세월 어머니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렇게 범진이네의 행복은 어머니의 우울증, 그리고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하루아침에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둘 다 보기 싫어. 나가버려!”

3년 전 어느 날, 어머니는 화를 참지 못하고 범수(남, 현재 10살)와 범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범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동생을 안고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큰 가방에 동생의 기저귀를 가득 넣어 들고 와서는 이리 말하며 서럽게 울더란다.
“죄송해요, 엄마. 그런데… 제가… 젖이 안 나와요.”

그 순간 어머니는 자신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을 깨달으며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이렇게 형편없는 자신을, 그래도 엄마라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식들이 한없이 가여워서…. 그리고 다시 행복해지기로 굳게 결심했다.
비록 범진이네를 만난 곳은 병원이었지만 이들은 진정 행복해 보였다. 두 아이가 나란히 감기로 입원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형 범수는 3주간 끙끙 앓으며 버티고 버티다가 몸이 너무 상해서, 동생 범진이는 형한테 감기 옮는다고 그렇게 혼내도 매일 붙어 있다가 진짜로 옮아 입원하게 된 것이다. 졸음을 꾹꾹 참고 계시던 어머니는 범진이에게 이상이 생길까봐 밤에도 잠을 거의 못 주무시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병이기에 병원에서조차 마음 놓고 있을 수 없는 것일까?
평소 범진이의 심장은 백 미터 전력질주를 한 사람처럼 뛴다. 그래서 몇 분만 걸어도 바닥에 누워 “헤엑 헤엑 헤엑” 하고 숨을 몰아쉰다. 슬프게도 그 작은 심장은 서서히 멈춰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심장을 둘러싼 근육이 점점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병은 몸에 무리가 오면 진행 속도가 더 빨라진다. 그래서 감기만 걸려도 유난스럽게 보일만큼 아이를 살펴야 한다. 희귀난치병으로 치료약도 없고 수술 성공 사례도 없다. 심장 박동을 천천히 뛰게 하기 위해 혈압 약을 아주 조그맣게 깨뜨려 먹이는 것이 전부이다. 게다가 음식은 삼키지 못해서 콧줄을 통해 직접 위로 공급하는데, 그나마 먹는 것도 토해버리고 만다.
“처음 몇 년간 범진이는 배고플 때면 콧줄 끝에 달린 뚜껑을 열고 저를 쳐다봤어요. 제가 ‘아니야! 음식은 입으로 먹는 거야’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죠. 그래도 요즘에는 맛을 알아서 입에 무조건 집어넣는데, 삼키지 않고 계속 볼에 모아두다가 나중에는 다람쥐 볼처럼 부풀어 올라요. 억지로라도 삼키게 하면 바로 다 토해버리고…. 검사를 하면 기능은 다 정상인데 왜 삼키지도 못하고, 소화도 못시키는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분유를 먹는 범진이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너무 작았다.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말은 석 달 전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한 말이 “엄마 아빠”가 아닌 “피”였다. 태어나자마자 가장 많이 보고 들은 단어였던 것이다. 떡볶이를 봐도, 김치를 봐도 모두 “피”라고 말해 빨간색이라고 가르치는 데만 꼬박 석 달이 걸렸다.

걸은 지도 일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오랫동안 물리치료를 받은 후에야 걷게 된 것이다. “막 걷기 시작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저는 복도 이 끝에, 아이는 저 끝에 서 있었는데, 조심조심 몇 걸음 걸어오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저랑 눈을 마주치더니 바로 뒤로 넘어가는 거예요. 순간 ‘콰당’ 하는 소리가 심장이 멈추는 소리 같아서 공포가 밀려왔어요.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를 안았는데, 온몸은 땀에 젖어 있고 숨은 헐떡헐떡거리고…. 그런데 말이에요~ 아이가 웃고 있었어요. 마치 ‘엄마, 나 봤어요? 나 자랑스럽죠?’라고 말하는 것처럼….”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화들이 범진이에게는 하나도 쉽지 않다. 고통스럽게 훈련하고 지겹도록 반복하며 이뤄내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 그러나 아이가 떼는 한 걸음에도 감동이 밀려온다. 범진이가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16만 원짜리 특수 분유만 소화를 시키던 때, 돈이 없어서 분유를 묽게 타 먹여야 했던 어머니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빚을 지더라도 맘껏 타서 먹여주고 싶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비록 아이의 성장은 늦고 심장 또한 굳어가고 있었지만, 측정할 수 없는 마음만은 더 말랑말랑해지며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어떡하지? 일하다가도 아이 생각만 나~ 우리 범진이는 정말 생각만 해도 200% 힘을 발휘하게 하는 아들이야.”
건축 현장에서 근무하시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아이들을 꼬옥 끌어안고 잠이 드신다. 믿었던 친구로부터 사기를 당해 벌써 5년째 빚만 갚고 있는 그는, 어김없이 월급날이면 전화를 걸어 “여보, 미안해.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생활비를 빼놨어야 했는데 내가 또 늦었네”라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단다. 어머니는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빚으로 빠져나가니 일하는 게 얼마나 허무할까’를 생각하면 아무리 속상해도 “수고했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범진이와 범수의 형제애도 유별난데, 형이 학교에 가면 범진이는 형을 기다리며 밥을 먹을 때도, 놀 때도 현관 앞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머니가 질투할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특별한 형제였다.
“반드시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으면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저희는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고 생각하기에 저희끼리 똘똘 잘 뭉치고, 서로 너무 그리워하나 봐요.”
이들은 조금만 무리를 해도 응급실에 실려 가는 범진이 때문에 동네 대형마트를 가기 위해서도 2,3일간 아이의 컨디션을 살피고 “나가도 괜찮겠다”라는 확신이 들어야만 외출을 시도한다. 그러다 ‘외출 성공’이라도 하는 날에는 범진이를 카트에 태워 신나게 달리며 환호하며 기뻐한다. 이들 인생의 대대적인 목표는 ‘범진이와 함께 놀이동산 가기’이다. 세상이 보기에는 초라한 외출, 하찮은 목표… 빚더미에 병을 앓는 자식까지 있는 가족일지라도, 나에게 범진이네는 행복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기사를 쓰고 있는 종이의 빈 공간에,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용서를 빌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진다.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저 흐느낌을 뚫고 당당하게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외면하는 눈, 비판과 정죄로 누군가를 쉽게 넘어뜨리는 입, 내 것을 챙기기에 바쁜 손과 소동을 일으키는 빠른 발, 꼿꼿한 목, 약한 자에게는 절대로 꿇리지 않는 무릎….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사연은 그 자체로도 슬프고 마음이 아프지만, 그들을 통해 나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가를 깨닫게 되기에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독자 여러분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이 시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나의 사랑 없음을,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외면했음을 회개하며 엉엉 울 수 있는 은혜가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글=설지원
토기장이 <편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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