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한 조각의 잠언 ▶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은 거지”

아, 저 여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니. 난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언니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가 한국에서 제일 예쁜 여자는 아니야. 진짜 예쁜 여자는 따로 있어. 다만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을 뿐이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이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뽑는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이상한 대회를 왜 여는 것인가.

하지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공중파의 황금시간 대에 방송되던 시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점수 매기고 순위 세우기에 바빴다. 어린 시절 나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는데, 당시 난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둘째 언니는 6학년이었다.

언니는 어린 나이임에도 독설을 참 잘했다. 요즘 유명하다는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 못지않았다. 뭔가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을 때마다 언니는 여지없이 한 마디 했다. 그 말은 옆에서 듣는 사람의 속을 후련하게 했고 가끔은 서늘하게도 했다.

당시 우리 둘이 밀었던 후보가 있는데 그녀는 아쉽게도 ‘선’이 됐다. 독설가인 언니가, 얼굴도 더 못 났고 분명 저 어색한 쌍꺼풀은 대회 전날 테이프를 붙인 게 분명하다고 장담하던, 한 여자가 미스코리아 진이 되고 말았다.

아, 저 여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니.

난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언니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가 한국에서 제일 예쁜 여자는 아니야.”

난 어리둥절했다.

“진짜 예쁜 여자는 따로 있어. 다만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을 뿐이지.”

당연하고 단순한 말이지만 내겐 참 인상적이었다. 생각해 보니 진정한 미인은 자존심 상하게 자신의 미를 전시하고 순위 매기는 덴 결코 나가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은 거지.”

화룡정점이랄까. 독설가인줄로만 알았던 언니는 결론까지 내주었다.

그 뒤부터 난 무슨 대회에서 누가 1등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 1등은 따로 있을지 몰라. 다만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을 뿐.’

그러고 보면 단지 대학을 나오지 않았을 뿐, 경력이 없을 뿐인, 그래서 대회 출전조차 못한(혹은 안한) 진정한 고수, 당연한 1등일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기도 하다. 확장하자면 다만 시작하지 못했을 뿐인 사람,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을 뿐인 사람, 단지 기회를 얻지 못했을 사람을 치자면 그 수는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을 뿐, 경력이 없을 뿐인 진정한 고수, 당연한 1등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고졸 출신의 은행 채용이 이슈가 됐다. 대졸 출신에 대한 역차별 아니냐, 생색내기 아니냐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으나, 어찌 보면 분분한 해석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이미 고졸 출신의 은행 채용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들이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항이다. 원래부터 있던 기회가 어느 순간 (부당하게) 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졸 출신이란 항목으로 규정지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력과 무관하게, 출신 대학에 매겨져 있는 서열에 상관없이, 나이의 많고 적음, 성별에 관계없이, 오직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나 재능, 잠재능력을 판단하여 입사시키는 것, 다만 대회에 나가지 않았을 뿐인, 묵묵히 실력을 쌓고 있는 이들을 애써 발굴해 내는 것이 공정한 일이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업무 수행 능력과 무관한 기준으로 판단해왔던 것 자체가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고 진정한 고수를 뽑는데 무책임한 일일 수밖에 없다.

서열 짓고 순위 매기는,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어지는 이런 일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너무 이상한 일 가운데 하나가 될 때, 더 많은 고수들이 행복하게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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