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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변화에 저도 놀라고 있습니다"
21년째 헌신하고 있는 선교사 노재인
[115호] 2011년 09월 25일 (일) 박에스더 기자 hipark@iwithjesus.com

대학 1학년이던 1980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민족복음화대성회에 참석했다가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에 몰두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스크랜튼” “방글라데시의 마더 데레사” 노재인 선교사가 잠시 서울을 방문했다.

“당신 안에 있는 빛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오!” 마을 지도자들 요청
 동네마다 초등학교 세워... 현재 13개 학교에서 1500명 학생 교육


   

 

노재인 선교사는 산소(O2)같다. ‘오염’이란 단어가 범접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 그에게는 있다. 아니, 오염물이 들어가서 녹아버린다고 하는 게 맞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것이 최대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그의 삶은 언제나 그리스도와의 동행뿐이다. 기독교대학에서 식품영양을 공부한 그는 '영양사'라는 자격이 선교에 접목될 수 있다고 영양사협회에서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이다. 평신도선교사의 개념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12명의 영양사가 모여 ‘오병이어선교회’도 함께 만들었다.  

대학에서 예수를 영접한 그는, 대학생활 내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C.C.C.와 예수전도단에서 훈련을 받으며, 자기를 복음을 들고 이방나라로 보내실 '그분'의 뜻을 늘 묵상했다. 훈련을 받던 어느 가을날,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멋지게 달린 것을 보고 “저 감나무도 저렇게 멋지게 결실을 맺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나는 감나무 한그루만 못하랴?” 생각하며 크게 도전 받았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해서 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선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하곤 했다.

   

 

“YOU MUST BE GO TO BANGLADESH!”
선교사로 삶을 살기로 결심은 했는데, 어느 곳에 가서 어떤 사역을 할지 아무 것도 몰랐다.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YOU MUST BE GO TO BANGLADESH!”라는 분명한 소리를 들었다. 방글라데시라는 나라도 잘 알지 못하던 때, 막막한 중에 기도하며 몇 주를 지나 "방글라데시를 다녀와서"라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목사님의 기행문을 접하게 됐고, 그곳에 영양사 한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내용을 보고 5-6개월간 기도하다가 그때까지 아무도 헌신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그곳에 자신을 인도하시는 ‘부르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때 복음주의협의회에서는 정말 그 열악하기 그지없고 무더운 나라에 가겠는지 몇 차례 다짐했다. 월드 릴리프(relief)의 모자보건 교육프로그램에 훈련요원으로 간 것이다.

그때 방글라데시에 들어가 지금까지 영양사에서 고아원 원장으로, 학교 설립자로, 마을 지도자를 돌보는 상담자로, 치유자로... 그의 역할은 다양하고도 놀랍다.

이슬람 땅에서 기독교학교 열셋 세워
노 선교사가 그리스도 복음의 꽃을 피우고 있는 쿨나(Khulna)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남서쪽으로 330km 떨어진(차로 8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125년전 불모지 한국 땅에서 문맹을 깨우고 복음으로 인재를 길러내고자 이화학당을 세웠던 스크랜튼 여사처럼, 시골마을 초라한 교실을 얻어 초등학교를 하나하나 세워가고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어떻게 기독교학교를 세울 수 있을까. 노선교사도 믿기 어려울 만큼 수없이 많은 기적이 선교현장에서는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단다.

“당신 안에 있는 빛을 보여주시오!”
이슬람이 83%, 힌두교가 16%인 사회에서, 회교지도자들이 노선교사를 찾아와 “당신 안에 있는 빛을 좀 보여 달라. 혹시 우리 세대에는 그 빛을 볼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우리 후손들에게 그 빛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들이 노선교사에게서 본 ‘빛’은 과연 어떤 것일까. 소박하고 순수한 선교사의 삶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말을 들은 선교사도 놀랐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술을 사용하셔서 그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난으로 교육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1994년 첫 초등학교를 세웠다. 기독교 학교를 표방하는 학교였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기독교학교 밖에 세울 수 없습니다. 동의하시면 학교를 세울 것이고, 여러분은 이 학교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부탁했다. 버젓이 기독교교육을 할 수 있고, 아이들이 공부하면서 예수를 알 수 있도록 주일학교를 열어 운영한다.

이 학교의 좋은 소문이 퍼져서 더 많은 지역에서, 이런 학교 제도로 저마다 학교를 열어달라고 여러 동네 지도자들이 찾아와 요청했다. 하나 하나 학교를 세우다보니, 지금 13개 학교가 됐다. 재학생만 해도 1500명이다.

   

 

“학교설립? 간단해요!”
외양간을 개조해서 쓰기도 하고, 어느 집 베란다를 임대해 사용하기도 한다. 어디서든 쓰지 않는 공간을 개조해서 사용한다.
“학교란 기본적으로 학생과 교사, 그리고 교실만 있으면 되잖아요! 시설을 잘 해놓는 것은 나중 얘기지요. 쿨라 빈민촌에 시작한 첫 학교 학생은 26명이었어요. 그러나 신실한 교사들의 수업수준이 높아서 좋은 학교로 인정받고 있어요.”
보잘 것 없는 학교지만 학생들이 자라는 것은 이 지역의 희망이다. 이들이 자라 방글라데시를 책임질 그리스도인들로 서는 날을 꿈꾼다. 그 꿈은 이미 현실이 되어 그들이 스스로 전도하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노선교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스스로 놀란다. 40여명의 교사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하다.

방글라데시가 변하고 있다
2010년12월15일, 방글라데시는 더 이상 회교국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건국 당시 정신(이념)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라고 한다. 언어(벵갈어)를 중심으로 국가를 세웠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종교와 사람들을 인정하면서, 특정종교에 매이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노재인 선교사는 더욱 마음이 분주하다. 방글라데시가 회교국을 포기하고 건국이념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의 시간이다. 새로운 꿈을 꾼다.
교육기관이 기본적으로 부족한 나라에서 특히 여성들은 교육의 기회가 적다. 여성 사역자들을 일깨워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우고자 여성성경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인재양성은 관심밖이기 때문에, 그 분야를 개발하려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 영혼들과 함께
인구 1억8천명. 남한의 1.5배 밖에 안되는 땅덩어리에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 특별히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여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지만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방글라데시. 노선교사에는 이들이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다. 겸손하고 인정이 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접하기만 하면 놀랍게 변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 찾아온다. 그래서 이 학교를 통해 자라는 아이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자라서 방글라데시를 복음으로 변화시킬 것을 생각하면 선교사는 가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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