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일상의 틈으로 들어온다


사탄이 쏘는 불화살이 어디에서 우리를 겨누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남이를 뒤쫓던 쥬신타처럼 일상의 매순간 빈틈을 노리고 있을 터입니다. 그러니 다시금 우리의 “전신 갑주”를 점검할 때입니다.

원래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 더러는 아무 대안 없이 멍해집니다. 당초 보려던 영화는 하루 한 차례 상영하는데 이미 시간은 한참 지난 뒤입니다. 마땅히 ‘플랜 B’를 세워놓지 않고 나온 상황에서 선택은 자명해집니다. 그 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와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를 택하는 거지요. <최종 병기 활>을 보게 된 연유입니다.

조선 인조 때 역적으로 몰려 죽어간 아버지의 최후를 가슴에 묻은 채 피신한 남매는 아버지 친구의 집에서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갑니다. 서로 자식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정도로 절친했던 아버지의 친구는 관직에서 물러나 한적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주인공 남이는 폐족(廢族)의 자손으로서 울분과 상처, 가슴 저미는 기억을 오직 활시위에 메겨 날리며 성장합니다. 십수 년을 산과 골짝을 내달리며 활을 쏘고 사냥으로 단련한 그에게 활은 어느덧 몸의 일부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영화는 남이의 누이 자인의 혼례 날 청나라 정예군의 급습으로 자인이 끌려가면서 긴박한 추격전으로 전환하기 시작합니다. 조선 인조 14년(1636)에 청나라 태종이 이끄는 20만 대군이 조선땅을 유린한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누이의 혼례를 축하하는 가죽꽃신을 몰래 남겨두고 떠나던 남이는 오랑캐의 사냥터가 된 혼례장을 지켜보며, 끌려간 누이를 구출해내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전을 벌입니다. 살아남은 오라비의 ‘끌려간 여동생 구하기’가 시작된 것이지요. 남겨진 여동생의 꽃신 한 짝을 품에 간직한 채, 아버지의 활을 무기 삼아 지형지물을 적절히 이용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화살의 발사지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청나라 군대의 틈새를 파고듭니다. 누이가 포함된 인질들을 끌고간 부대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추적해 가던 중 청나라 왕자를 인질 삼아 누이의 구출을 시도합니다. 뒤늦게 왕자의 막사에 도착한 맹장 쥬신타는 왕자의 복수를 다짐하고 수하 전사들을 거느리고 맹렬한 기세로 남이를 뒤쫓습니다. 여동생을 구해내기 위해 적군을 뒤쫓던 자는 이제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쫓기는 자가 되어, 주군의 죽음을 되갚고자 화살의 속도로 쫓아오는 자와 피할 수 없는 적대적 대결을 치르게 됩니다.

 



활을 유일한 무기로 삼은 한 사내의 ‘여동생 구하기’ 활극인 이 영화는 현란한 몸 동작과 타격감 넘치는 육박전, 고도의 무술이 없어도 액션 영화가 된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과 미세한 떨림, 사수의 표정과 표적을 노리는 눈빛,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화살의 속도감과 표적을 명중시키는 사운드와 타격감 등을 효과적으로 살려내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영화의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활은 원거리용 무기입니다. 사정거리 안에서 몸을 숨기고 표적을 겨누다 이때다 싶은 순간 시위를 놓아 화살로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지요. 사울 왕이 길보아 산에서 자결로 최후를 맞이한 것도 블레셋 궁수(archer)의 화살에 치명상을 입어 치욕스런 죽음을 예견했기 때문입니다(삼상 31:1-5). 유다의 요시야 왕도 므깃도 골짜기에서 이집트군의 화살에 치명상을 입고 숨집니다(대하 35:19-25). 활과 화살이 살상용 무기로만 쓰인 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일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뒤, 에셀 바위 곁에 숨어 있던 다윗에게 돌아와도 안전한지 아니면 멀리 도망가야 할지를 화살을 쏘아 신호로 삼기도 했습니다(삼상 20장 참조).

영화의 끝부분에 이르러 방심하는 사이 남이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칩니다. 그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활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거지요. 표적을 겨냥하여 어두운 곳에서 숨어 화살을 날리는 건 액션 영화에만 나오는 일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활과 화살의 은유가 심심찮게 나옵니다. 심지어 그냥 화살이 아니라 ‘불화살’[火箭, burning arrows]입니다.

“내가 주님께 피하였거늘, 어찌하여 너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느냐? ‘너는 새처럼 너의 산에서 피하여라. 악인이 활을 당기고, 시위에 화살을 메워서 마음이 바른 사람을 어두운 곳에서 쏘려 하지 않느냐?’”(시 11:1-2)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엡 6:16, 이상 새번역)

사탄이 쏘는 불화살이 어디에서 우리를 겨누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남이를 뒤쫓던 쥬신타처럼 일상의 매순간 빈틈을 노리고 있을 터입니다. 그러니 다시금 우리의 “전신 갑주”를 점검할 때입니다(엡 6:11-17 참조).

* <최종병기 활>, 박해일(남이), 류승룡(쥬신타), 문채원(자인) 주연 김한민 각본/감독. 2011년 8월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