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안정제 주사를 맞고 곯아떨어진 그분 옆에서 아내가 섧게 울고 있다. 아직도 얼굴은 벌겋게 부어올라 있는 채였다. “힘드시죠?” 병아리 정신과 의사가 묻는다. “아뇨, 전 괜찮아요. 근데 저 사람이 너무 불쌍해서요. 정말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외부요인으로 뇌가 손상되어 분노가 나타난 경우

“그분이 오신다.”
정신과 수련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였다. 응급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선배님이 말씀하셨다. 명찰에는 정신과 의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아직까지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채로 지내던 1년차는 갑자기 부산스러워진 선배들을 영문을 모른 채 바라보기만 했다. 1년차를 제외한 나머지 선배들은 다들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병동 내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 전에 고함 소리와 함께 우당탕하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분’은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30대 후반의 남자 분이었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에는 담당 주치의가 살아서 퇴원하기 힘들 거라고,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셔야 할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분은 살아남았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세상에 덜렁 남겨질 줄 알았던 아내는 기쁨으로 그의 회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온순하고 얌전한 성격이었다던 그는 감정, 특히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에는 많이 다쳤으니까 충격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이 다 낫고 충분히 회복되었다 생각했는데도 가면 갈수록 더 분노는 심해졌다. 얼마 전 다시 찍은 뇌 MRI는 뇌 실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품처럼 공기방울이 가득 차 있는 그분의 머릿속을 보여주었다. 그는 정신과와 신경외과 약물을 복용했지만, 약으로 조절이 안 될 만큼 난폭해지는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입원을 해야만 했다. 그분이 응급실을 통해서 정신과 병동으로 올라올 때에는 응급실의 남자 간호사들과 119대원, 정신과 병실의 남자 보조원까지 다 동원되어 그를 침상에 찍어 누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분이 충분히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는 병실이 거의 전쟁터처럼 보일 정도였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어서 적용하던 강박을 풀고 보호자로 옆에 있던 아내를 주먹으로 두드려 패기 일쑤였으니까.

안정제 주사를 맞고 곯아떨어진 그분 옆에서 아내가 섧게 울고 있다. 아직도 얼굴은 벌겋게 부어올라 있는 채였다. “힘드시죠?” 병아리 정신과 의사가 묻는다. “아뇨, 전 괜찮아요. 근데 저 사람이 너무 불쌍해서요. 정말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뇌 조직만으로 인간의 존재를 설명한다는 건 사칙연산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던 병아리 의사도 이런 순간에는 할 말이 없다. 그는 여기 살아 있지만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다. 혈액 검사로 설명되는 그는 지극히 건강한 중년의 남성이지만, 뇌 사진으로 보여지는 그는 ‘이런 뇌를 가지고도 생활이 가능할까?’ 가슴이 철렁해지는 모습이고, 옆에 있는 아내에게는 두려움이자 안타까움의 이름이다.

#뇌의 이상으로 분노가 나타난 경우

분노를 관장하는 뇌의 부분은 여러 곳이 꼽힌다. 길에서 낯선 사람이 발을 밟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화가 나는데, 이때는 후뇌가 작용한다. 과거의 기억과 연결해서 분노를 느낄 때에는 중복측 전전두엽 피질(medial ventral prefrontal cortex)이 작동한다.

부부 싸움을 할 때 요령 중의 하나는 현재 시점의 문제만 가지고 다투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은 맨날 그래!”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열이 솟구친다면 이때 작동하는 뇌가 이 부분이다. 대뇌 변연계, 그 중에서도 특히 편도(amygdala)는 폭력과 연관성이 높다. 그러나 편도를 자극한다고 해서 항상 폭력이 유발되는 것은 아니며, 편도 자극은 불안과 우울, 분노, 두려움과 공포 등 다양한 감정들을 몰고 온다.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에 파묻혀 있는 도피질(島皮質, insular cortex)은 감정과 신체의 항상성 조절에 기여한다. 도피질은 냄새나 오염에 대한 역겨움을 처리하는 자리이기도 하며, 분노 외에도 공포나 행복, 슬픔 같은 기본 감정 경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상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서 오른쪽 앞 도피질이 두껍다는 보고가 있어서 관심을 모으는 자리이기도 하다. 외측 안와 전두엽(lateral orbitofrontal cortex)은 분노하는 사람에서 공통적으로 활성화되는 자리인데, 동기 부여와 긍정적인 감정 처리에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다.

분노 및 행동 통제가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뇌수술은 뇌의 특정한 부위를 수술로 파괴함으로써 조절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아직까지도 공격적이거나 난폭한 행동을 병적으로 일삼는 사람에 대한 수술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고 하는데,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심한 난폭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의 뇌 시상하부를 국소적으로 파괴한다. 국내에서는 심한 강박증이나 난치성 간질 발작에 대한 뇌수술은 시행되고 있지만 분노나 폭력 등의 이유로 시행하는 수술은 윤리적 문제 때문에 시도되지 않고 있다.

2010년에 개봉한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서는 병원이 생긴 이래 가장 위험한 환자인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를 대상으로 전두엽 절제술(lobotomy)을 실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를 안 본 사람에게는 심각한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테디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상태에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어떤 시도로도 잘 통제되지 않는 정신질환을 잡아 보고자 모든 치료진이 일종의 역할극을 펼치면서 테디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그걸로도 잘 안 되면 수술적으로 접근할 계획이었다. 테디가 이렇게 된 것은 분노와 그에 따른 죄책감 때문이다. 어느 날 테디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 왔을 때 그는 아내가 그들의 자녀 셋을 죽였다는 걸 발견한다. 분노를 참지 못한 테디는 순간적으로 아내에게 총을 쏴서 그녀를 살해한다. 우울증을 앓는 아내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죄책감이, 이렇게 되도록 방관한 것처럼 보이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그의 정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은 조절되지 않는 감정이나 생각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특히 그것이 분노처럼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뇌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뇌 역시 미지의 대상이자 철학이 포함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는 기관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뇌에 대한 연구가 역동적으로 진행되어 그 어떤 세대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자부하지만, 맨 처음 이야기한 ‘그분’과 같은 경우 아직까지 현대 의학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그를 진정시키고 억제하는 것 외엔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테디는 일부러 정신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체 하면서 스스로 뇌수술을 선택한다. 테디는 수술실로 데려가는 보조원을 따라가기 전에 자신의 주치의에게 묻는다. “괴물로 사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죽는 게 좋을까요?” 테디의 실제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아는 정신과 주치의의 뭐라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얼굴.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사람으로서는 ‘과연 선택지가 그 둘 뿐이었을까?’를 묻고 싶지만, 분노의 치명적인 결과 앞에 무너진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 질문이기 쉽다. 극한 분노는 항상 흑백 두 가지로만 상황을 나누는 경향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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