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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 동안 세계를 누볐어요!"
아주 특별한 신혼여행 권태훈 진은지 부부
[113호] 2011년 08월 07일 (일) 이범진 poemgene@naver.com


권태훈 씨는 결혼을 준비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도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였다. 정해진 시간에 나와야 할, 정해진 사람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 중이었다. 세계여행을 하고 온 가족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아나운서가 정해진 질문을 던진다.
“비용은 얼마나 드셨나요?”
“1인당 2,0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서른의 산책

   

 

평범했던 권 씨가 자신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세계여행을 계획한 건 이때부터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즉시, 결혼을 약속한 진은지 씨와 상의했다. 이들의 기나긴 신혼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때 둘의 나이가 딱 서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 여행을 ‘서른의 산책’이라 부른다. 

10년간의 만남, 그리고 다른 차원의 인생이 시작된 서른의 결혼, 동갑내기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손을 마주 잡으며 우리의 서른을 좀 더 풍성한 빛깔들로 물들여보기로 하고 세계 곳곳을 산책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 이런 질문 많이 받으셨겠지만, 여행에서 무엇을 얻으신 것 같나요?
특별하게 거창한 것을 얻진 않았어요. 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모든 대륙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에 대해 생각을 더 진지하게 한 거요? 한국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고요. 머리로만 알던 것을 몸으로 깊이 체험했어요. 아프리카에 갔을 때, 머리로만 알던 물의 귀함을 몸으로 뼛속 깊이 알게 되듯 말이죠.


인간 극장

1년 여행을 위해 준비한 돈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았다. 여행은 2년 10개월 동안 지속했다. 중국, 티베트, 네팔, 이탈리아, 스위스, 인도 등 50여 개국을 다녔다. 중간에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더 있을 작정이었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는데, 이들은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삶을 배웠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여행객, 현지인,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저희에겐 여행지였던 거죠. <인간극장>을 수백편 본 기분이라고 할까요? 물론 다투기도 했고요. 선진국일수록 이야기 상대를 만나기가 힘들어요. 다들 바쁘니까요. 반면 후진국이라 불리는 곳에 가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기한을 정해놓은 여행이 아니기에, 명소 앞에서 시간에 쫓겨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다. 마음에 내키면 찍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유독 현지인이 찍힌 사진이 많다. 평범한 현장도 이들의 렌즈에 담기면, 한편의 인간극장이 된다.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몸집의 여인들이 물건을 고르며 흥정을 시작하자 소년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울듯 말 듯…. 아직 소년은 시장의 호흡을 익히지 못한 듯 보였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빨리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 (터키 안타키아의 재래시장)


꽉 찬 여운

여행 중간에, 선교사들을 만나 사역을 돕기도 했다. 웹디자이너로 일했던 태훈 씨는 선교지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손을 도우며 6개월을 머문 지역도 있었다. 웬만한 단기선교사들이 머무는 시간보다 긴 기간이었다.


“아니요. 오히려 선교사님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선교사들이 정말 어렵게 사역하고 있다는 것도 눈으로 직접 봤고요.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이 우리 같은 여행객들에게는 정말 친절하게 온갖 정성을 다해주지만, 선교사들에겐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와중에, 끼니도 때울 수 있고, 잠잘 곳도 마련해주셨으니, 저희가 신세를 진 거죠.”

- 세계 곳곳을 다녔는데, 위험한 적은 없었나요?
큰 위험은 없었어요. 위험한 지역은 관계자들이 위험하다고 말해줘요. 밤에 밖에 나가면 안 되는 곳이 어디인지, 다 알려줘요. 그 사람들 말만 잘 들으면 크게 위험에 처할 일은 없어요. 현장 관계자들의 지시를 어길 때, 사건이 터지죠. 교인들이 비전트립, 단기선교를 가서 단체로 이동하곤 하는데, 중동지역에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에요. 

여행에 다녀온 이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맨몸으로 세계를 누볐다는 자신감과 세계인들로부터 배운 지혜가 한몫했다. 큰집, 큰 차, 큰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 여행 후, 눈에 띄게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요?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여행의 여운이 느껴져요. 여행가기 전에는 넓은 집,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런 거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이들을 보고, 그렇게 살아봤기 때문인가 봐요. 교통비 5원을 아끼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한국 사회의 물량주의, 소비주의가 눈에 들어왔고요. 우리 아이들에겐 그런 것을 물려주지 않으려고요.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면 다시, 여행 가방을 꾸릴 거예요.

첫째 아이의 돌잔치 날, 지인들로부터 받은 축의금을 모아 여행할 때 만났던 케냐의 한 선교사에게 보냈다. 유치원 설립에 보탬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집 마련’이나 ‘안정된 직장’을 좇는 게 아니라, 설렘을 원동력으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 세계여행을 단지 이룰 수 없는 꿈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이유가 직장과 돈 때문이에요. 직장을 버리고 가야 하는데, 다녀와서 무엇을 할지 불안한 거죠. 하지만 저희는 지금 다녀와서도 잘 살고 있잖아요.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되고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에 집착하며 인생을 보내기가 너무 아깝잖아요. 세계여행을 다녀오면 이런 자신감이 생기나 봐요.

글=이범진 기자
사진=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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