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창의 '인생 둘레길'


우리 몸도 폐차하고 또 새 차를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차를 한 대밖에 주시지 않았다. 그러니 빼 먹지 말고, 귀찮다고 거르지 말고, 돈 든다고 고집피우지 말고, 시간 없다고 핑계대지 말고, 검사 무섭다고 어리광 피우지 말고 정기검진을 해야 한다.


과거에는 암에 걸리면 곧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으면 완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진의 암 완치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올라가서 이제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고, 위암의 경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이제는 암을 완치한 뒤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두는 시대이다. 과거에는 완치되어도 합병증과 기능장애로 사회와 격리되거나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여생을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치료방법이 발달하여 완치율도 높아지고 조기에 치료하는 사례가 늘어 과거보다 기능장애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암 치료의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은 암을 완치하는 것과 더불어 치료에 따른 합병증과 기능장애를 최소화하여 환자를 다시 가정과 직장에 복귀시키는 것이다. 


완치 이후를 걱정하는 암 치료

초고속으로 고령사회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 사회의 경우 암은 여전히 가장 흔한 사망원인이므로 암은 언젠가 걸릴 확률이 가장 높은 질환 중 하나다. 나에게는 전혀 발생할 것 같지 않은 암, 나에게는 생길 이유가 전혀 없는 암 같지만, 사실은 언젠가 나에게 발생할 확률이 가장 높은 질병 중 하나이다. 나는 내 몸에 생길 수 있는 암의 모든 알려진 원인을 내 의지로 혹은 생활습관의 변화로 미리 통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암이 나에게도 언젠가는 한 번 올 수 있고 또 실제로 온다고 가정한다면 암은 작고, 초기일 때 발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책이다.

초기에 발견한 암을 치료하는 방법과 말기의 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매우 큰 차이가 난다. 초기에는 한 가지 방법으로 치료해도 되지만 초기를 지나면 치료방법을 다양화해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설암의 경우 혀 표면에 생긴 작은 암은 그 부위만 절제하는 간단한 수술로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파이거나 크기가 엄지손톱 만큼 되면 림프절 전이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목에 긴 흉터를 각오하고 림프절 절제술도 같이 해야 한다. 더욱이 혀가 없어진 부분이 넓으면 다른 부위의 조직으로 새로운 혀를 만들어 넣는 재건수술까지 해야 해서 수술 범위는 더 커진다. 치료 기간도 길어짐은 물론이고 치료 후 회복기간에도 많은 차이가 난다. 1, 2기에 발견되는 것과 3, 4기에 발견되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수술의 종류, 범위, 완치확률, 기능장애, 미용 등 모든 면에서 다르다.

야구와 꼭 닮아서 인생에서 5회나 6회에 한 점 정도 잃는 것은 다시 동점으로 회복할 기회가 많고, 안타 한두 개로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암도 1기에 발견하면 한 가지 치료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6, 7회에 4, 5점을 잃게 되면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가까스로 동점을 만든다고 해도 안타와 홈런 등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온갖 체력을 다 소진하고 그야말로 악전고투 끝에 겨우 얻게 되거나 모든 투수를 다 쓰고서도 결국 패하는 경우가 많다. 힘내라고 소리치고 깃발 흔드는 열렬한 팬을 뒤에 두고 눈물을 머금은 채로 말이다. 


점수를 내준다면 초기에 한 점으로

그러나 암을 초기에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암은 대체로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초기에 통증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암은 신경을 침범하거나 암이 헐어 염증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프지 않다. 아파서 병원에 가보거나 불편한 증상이 있어 병원에 가서 암으로 진단이 되는 경우는 대부분은 진행된 경우이다.

그러면 어떻게 초기에 진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암이 생기더라도 완치확률이 높고 수술해도 기능장애 없이 나을 수 있을까? 정기적인 암 검진 이외엔 방법이 없다. 정기적으로 내시경을 비롯한 암 검사를 거르지 않고 받는 것만이 유일하게 암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이다. 암을 무서워하면서, 암으로 고통 받는 이웃과 가족들을 보면서도 정작 본인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암 검사를 포함한 건강검진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고통 없이도 내시경을 시술할 수 있고 특히 두경부암은 입안을 잘 들여다보고 외래에서 가느다란 내시경으로 후두와 인두를 관찰함으로, 간단한 초음파검사를 함으로 대부분의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

기껏해야 20년 타는 자동차는 애지중지하여 정기검사를 하고 행여 다칠까봐, 행여 사고 내면 큰 돈 들까봐 보험까지 들면서도 자동차보다 수백 배, 수천 배 중요한 우리 몸, 아니 가치로 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우리 몸은 정기검사 없이 혹사시킨다. 정기 암 검진 없이 살아가는 것은 보험 없는 자동차를 모는 것 같다. 우리 몸은 자동차와 똑같다. 우리 몸도 폐차하고 또 새 차를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차를 한 대밖에 주시지 않았다. 그러니 빼 먹지 말고, 귀찮다고 거르지 말고, 돈 든다고 고집피우지 말고, 시간 없다고 핑계대지 말고, 검사 무섭다고 어리광 피우지 말고 정기검진을 해야 한다. 차량은 법령으로 정기검사를 받게 되어 있는데 사람은 정기검진을 받는 것이 법제화 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 차보다 못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가치의 아이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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