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30쪽짜리 작은 책 한 권이 프랑스 사회를 들었다가 놓았습니다. <앵디녜 부!>(Indignez vous!). 우리말로 ‘분노하라’는 제목의 소책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독일 나치에 맞섰던 아흔셋의 스테판 에셀이란 분이 지은이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되어 나왔습니다.

에셀은 이 책에서 프랑스인과 다른 모든 세계인들에게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되찾아,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자”고 촉구합니다.

내용이 독창적이거나 깊이 있는 분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근대적 시민사회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시장에 대한 맹신과 자본의 폭력에 ‘분노’하라는 칼칼한 외침은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그는 말합니다.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

얼마 전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의미 있는 메시지들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분의 제자였던 소설가 서해성 씨의 이야기입니다.

“늘 김준엽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 ‘마지막 광복군’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분은 마지막 광복군으로서 종을 치신 분이 아니고, 자기가 새로운 일을 당할 때마다 늘 새로운 광복군이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광복군의 정신, 그러니까 모든 문제에 늘 정면으로 맞섰고, 그걸 돌파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문제는 그분을 칭송하는 것이 자칫하면 우리의 비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겁하니까 그분이 훌륭하다. 우리의 비겁을 외면하기 위해서 그래서는 안 되고 바로 그분이 싸워 오셨던 것처럼 이제 남은 우리가 광복군이 되는 일이야말로 그분의 삶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두 분의 말씀을 전하면서 저는 두 단어를 부각시켰습니다. ‘분노’ 그리고 ‘정면돌파’입니다. 우리 안에는 오래 전부터 이상한 정서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좋은 게 좋다, 대충 넘어가자, 시간이 지나면 잘 되겠지…. 이런 정서들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분노 없이 정의를 이루지 못하였고, 불의 앞에서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의를 이루지 못하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동체로부터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거룩한 분노와 정직한 정면돌파 없이 결코 위기를 건널 수 없음을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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