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사람 : 반기문 UN사무총장과 박수길 UN협회세계연맹회장


당시 스물여덟 살, 처음으로 ‘국제’라는 부분에 내가 관심이 있다는 것과 그것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학부에서 한국사를 전공했기에 다시 국제대학원에 들어가 ‘국제학’을 공부하고 직장 경력 없이 사회에 다시 나왔던 때가 서른 살.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지금까지 유엔 산하기구인 유엔거버넌스센터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내가 유엔이란 곳까지 오게 되기까지 두 분의 만남이 있었다.


# 박수길 대사님과의 만남


대학원 첫 수업은 ‘국제회의외교’란 과목이었다. 당시 ‘코파이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학생들과의 교류프로젝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나는 첫 수업에 빠지는 것이 예의가 아닌 듯해서 1교시만 듣고, 쉬는 시간에 인사와 함께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리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 수업시간에 나는 과목 담당이었던 박수길 대사님(유엔협회세계연맹 회장, 주유엔대표부대사 역임)으로부터 “내 조교를 맡아줄 수 없나?”라는 요청을 받았다.

첫 시간부터 적극적으로 인사를 해오고, 자신의 활동을 설명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대사님의 오랜 유엔에서의 근무경험과 ‘은막 뒤의 이야기’는 내게 ‘유엔’에 대한 조그만 꿈을 꾸기에 충분한 자극이었다. 그리고 대사님은 내게 종종 전화를 주셔서 격려를 해주시곤 했다.


#무급인턴에게 악수를 건넨 반기문 사무총장

대학원 재학생 시절 어렵게 외교통상부의 무급인턴의 기회를 얻게 됐다. 당시 유급인턴제도도 있었지만 경쟁률이 높아서 ‘무급’의 기회를 두드렸고, 나는 우연하게도 ‘유엔과’에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했다. 그 당시의 외교통상부 장관은 반기문 현 유엔사무총장이었고, 유엔과에서는 내부적으로 ‘유엔사무총장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었다.

내게 맡겨진 임무도 과거 유엔사무총장의 이력을 찾고, 관련된 동향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준비한 문건이 외교통상부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나가고, 다시 언론에서 그 내용을 활용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한번은 당시 반기문 장관님이 사무실에 들러 캠페인팀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노고를 위로한 적이 있다. 무급인턴이었던 나는 제일 나중에 차례가 되어, 악수를 하는데, 옆에 있던 유엔과장님이 큰 소리로 “여기는 무급인턴 김정태 씨입니다.”라고 ‘무급’을 강조하는 바람에 괜히 무안한 기억이 있다.

다시 학교에 돌아와 석사논문 주제를 찾으면서 인턴십 과정에서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문헌이 국내에는 빈약하고, 제대로 된 분석이나 논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 내가 직접 해보자!”라고 생각해, 외국에 있는 고문헌, 역대 사무총장의 전기 등을 외국에서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당시 논문 지도교수님이었던 서창록 교수님(고려대 국제대학원)은 내가 보고 싶은 자료와 책을 무제한으로 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다.

그렇게 나온 석사논문이 <균형을 잡으며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유엔사무총장의 리더십>(The UN Secretary-Generalship "Walking a Two-scope Rope)이었다. 코피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박수길 대사님은 논문을 직접 코피아난에게 전달하고 설명해주어, 제자를 힘껏 격려해주셨다. 


#유엔으로 가는 길

그다음은 뉴욕에 위치한 유엔본부 인턴을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 탈락한 후 이듬해 두 번째로 지원했을 때도 결과는 낙방이었다. 천여 명이 넘는 지원자 중에 100여 명 안팎을 뽑는 치열한 경쟁이었다. 박수길 대사님도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친히 추천서를 써 주시기도 했다.

결국, 인턴십 시작을 한 달 앞둔 6월경 ‘합격자가 1명 발참을 통보해와 자리가 비었으니 아직 관심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재수 끝에 길이 열렸지만, 당시 뉴욕으로 가는 왕복항공료를 구하지 못해 고민할 때 박수길 대사님께서는 내가 쓴 논문을 가지고 한 협회에 가서 내 꿈과 유엔 인턴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고 권유해주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하다가 나오는 길에 나는 ‘왕복항공료’ 수표를 받았다. 다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뉴욕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UN의 직원으로 다시 반기문 사무총장님을 만나다

2007년 나는 한국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유엔사무국 소속기관은 유엔거버넌스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반기문 사무총장님이 한국을 최초로 공식방문을 할 때, 나는 유엔본부로부터 ‘사무총장 방한팀 외신담당’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국내 유엔 직원 리스트를 검토해봤는데, 유일한 ‘홍보’ 담당자이기에 요청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엿새 동안 반 총장님과 외신기자들과 함께 전 일정을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반 총장님이 수고한 스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눌 때 나는 미리 준비한 <유엔사무총장>(석사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한 책)에다가 작은 메시지와 싸인과 함께 선물해드렸다.

반 총장님은 내용을 신기해하시며, 내겐 본인의 사진에다가 직접 내 이름과 싸인을 해서 선물로 주셨다. 약 1년 전 무급인턴으로 만나 뵙던 분을 만나 유엔의 직원으로서 함께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내겐 반기문 사무총장님과 박수길 대사님과의 만남이라는 축복이 있었다. 이 분들의 끊임없는 영감과 격려, 그리고 멘토링으로 나는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글=김정태
UN거버넌스센터 팀장으로 <최신 유엔 가이드북>, <유엔사무총장>, <유엔에서 일하고 싶어요>와 같은 UN관련 책은 물론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리얼멘토링> 등 10여 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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