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나와는 생각이 다르지만….

충남 보나교회는 몇몇 가정이 함께 모여 농사를 짓고, 자녀들은 홈 스쿨을 하면서 농업을 통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이 기독교공동체는 처음에는 한두 사람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강동진 목사 혼자였습니다. 얼마 후 땀 흘려 일하고, 직접 소출한 양식으로 생활하기 원하는 청년들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처음 며칠은 아주 좋았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면서,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거든요. 강 목사는 이것을 ‘얄팍한 거룩의 가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잘만 통했던 이 가면이 공동체에서는 종종 벗겨졌습니다. 24시간 내내 가면을 쓰고 있을 수는 없었던 거지요. 도시 생활을 버리고, 큰 결단을 하고 찾아온 이들이었지만, 문제는 작은 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치약을 짜는 방식이 화근이었습니다. 밑에서 짜 올리는 사람이 중간을 푹 눌러 짜내는 사람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선교에 헌신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치약 하나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요. 그래도 도시의 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적어도 거룩의 가면을 벗고,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공동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2002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공동체가 두 파로 나누어져 사상 전쟁을 치렀습니다. 사적 소유의 인정을 어디까지 할 것이냐가 쟁점이었습니다. 일은 안 하고, 밥 먹는 시간만 빼고, 계속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거룩의 가면도 벗어던졌겠다,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눈에 실핏줄이 터졌고, 어떤 이는 공동체를 둘로 나누자는 극단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3일이 흘렀습니다. 갑자기 싸우던 중, 성령님이 찾아왔답니다. 서로 울고불고 회개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만난 이들은, 또 싸우기 시작한 거지요. 격한 토론이 벌어졌지만, 뭔가 다른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논쟁 후에 싸우던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는 생각이 다르지만, 당신네와 함께 살기 위해서라면 내 고집은 버릴 수 있어요.”

성령의 임재는 꼭 눈물이나 방언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사상이나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그 공간에 성령이 계신 거겠지요. 성령충만한 이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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