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살아온 참 스승 ‘김교신’

참 스승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스승을 잃은 사회,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던 그 불행한 시간에 우리에겐 참 많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이 김교신 선생님입니다.
당시 양정고등보통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받은 분들은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안국동서 학교까지 좁은 골목길에서는 (자전거를) 살살 타시며 앞에 학생들이 걸어가면 놀랄까봐 종소리 하나 내지 않으시고 살짝 비켜 가시곤 했다. 다른 분들은 멀리서부터 요란스럽게 종을 울리며 비켜서게 하고 빨리 달려가는데 말이다. (…) 선생님은 또 눈물이 많으셨다. 그때 말씀하시기를 늘 아침 네 시에 기상하시어 먼저 냉수마찰을 하시고 산 속에 들어가 기도와 울음으로 아침 시간을 지내신다고 하셨다. 앞서 말한 <최용신 양 소전>을 읽으시느라고 손수건 세 장을 적시셨다고도 하셨다.

전 고려대 교수였던 심리학자 고 김성태 님은 김교신 선생님을 이렇게 추억합니다. 눈물이 참 많던 선생님이야말로 참 스승의 마음을 가진 분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험을 치를 때 선생님은 첫 머리에다 “거짓말을 쓰면 0점을 준다”는 경고문을 써두시고 아무리 백점의 답안을 써도 자신 없는 답이 하나만 있으면 0점으로 처리하였다고 합니다.
동요작가인 윤석중 선생이 기억하는 김교신 선생님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험 보는 시간에 커닝하는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눈물이 글썽해지는 선생이 계셨다. “아무개는 더럭더럭 내주는 졸업장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툇자를 놓고 나간 적이 있는데, 그대는 어쩌자고 그 짓을 하고 앉았는고…. 남의 것을 보고 베껴 좋은 끝수를 땄다고 치자. 그런 식으로 학교를 나오고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협잡꾼밖에 더 되겠는가.”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시는 것이었다.

베를린의 영웅 손기정 선수 또한 김교신 선생님의 제자였지요. 일본에서 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전이 열릴 때 손기정 선수의 코치로 따라갔다고 합니다. 손기정 선수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중간지점부터는 선두가 되었는데 그때 선도차에 탄 김교신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연도의 사람은 보지 않고 오로지 스승님의 눈물만 바라보며 뛰었다. 그리고 나는 우승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이런 귀한 분이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었고, 또 애국자였으며, 교육자였던 분, 그분이 더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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