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사람 > 허문영 평화한국 상임대표

두 번째 만남은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목적이 있는 가치지향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방향추가 요동치는 듯했다.


1987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나라 안이 온통 민주화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뭔가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중학교 2학년인 사춘기(思春期) 청소년인 내게도 그 변화의 바람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전국적으로 6월 민주항쟁이 절정이 달할 무렵 지방 중소도시 강원도 춘천도 연일 시위의 연속이었다. 춘천 명동 거리 시위대에서도 낯익은 얼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춘천중앙성결교회) 대학부 형, 누나들 그리고 동네 아저씨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데모는 의식화된 좌경용공 분자들만 하는 것이라고 배웠던 고정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사회문제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에는 좋은 대학생 선배들이 많았다. 선배들은 젊은 패기와 순수한 신앙심, 그리고 후배들을 배려해 주는 훌륭한 인품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선배들은 세상의 가치관보다는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확고한 삶의 우선순위를 갖고 있었다.


# 첫 만남

당시 춘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기독교학문연구회라는 기독교 세계관 모임이 있었다. 기독교학문연구회는 세상과 교회를 구분 짓는 이원론의 신앙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나타내고자 하는 젊은 지성인들의 모임이었다. 이곳을 통해 삶의 의미와 실천적 가치를 배운 청년 대학생들은 자연스레 ‘창조-타락-구속’의 기독세계관 이야기와 변혁, 비전, 꿈 이야기를 중고등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나 역시 그들에게 배웠다. 

그때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선배들을 챙겨주던 대학원생 선배와의 자연스러운 만남도 이어졌다. 그때 만났던 ‘대학원 선배’가 바로 허문영 평화한국 대표이다. 탁월한 기독 지성인이었던 그와의 첫 만남은 21년 전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지성과 영성 그리고 열정이 겸비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 오랜 시간의 만남은 아니었지만 ‘어떤 삶이 아름다운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 첫 만남 이후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하시고, 새롭게 개원한 통일연구원에 연구원으로 참여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의 영향을 받아 통일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 두 번째 만남

그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1년이었다. 북한/통일 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서강대 석사과정에 진학했을 때, 그를 객원교수로 만난 것이다. 수업과 인생 상담을 동시에 받으며, 내 지식과 삶의 가치들이 다시금 정립되고 있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한참 고민이 많았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 꿈에 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 다시 청소년 시절 나에게 신앙과 꿈을 심어주었던 ‘멘토’를 만난 것이다. 두 번째 만남은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목적이 있는 가치지향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방향추가 요동치는 듯했다.

 

# 세 번째 만남

두 번째 만남 이후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의 세월 동안 박사님과의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어왔지만, 이제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어느덧 내 나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나이를 넘겼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되는 그와의 만남은 아마도 함께하는 동역자로서의 만남이 될 것 같다.

얼마 전 나는 통일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전공을 살려 통일과 국가 브랜드 전략을 접목했고, 그 사이 사이에 즐거운 상상을 채워 넣었다. 이 책이 나오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누가 뭐래도 허문영 박사님이다. 박사님께 받았던 가르침과 그분의 헌신된 모습이 없었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뿌렸던 통일의 씨앗들이, 지금 다양한 모습으로 열매 맺고 있음을 본다.

지금 허문영 박사님은 중년이 되셨지만, 여전히 20여 년 전 젊은 청년의 정신으로 통일한국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된 그의 삶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도전받고, 평화 한국의 길로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고민의 순간순간마다, 그를 떠올리며 인생의 무게를 키워갔던 것처럼.


글=전병길
예스이노베이션 경영컨설팅의 대표로 (사)리더십코리아의 사무국장과 한국소비자포럼의 브랜드컨설턴트를 역임했다. 연세대 경영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저서로는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코즈마케팅>, <통일한국 브랜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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