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법인이사회에서 ‘조찬 대화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이슈에 대해 바르고 의미있게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방향을 잡아가는, 대화모임입니다. 3월 우리들의 주제는 ‘사회적 교회’였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우리는 움직일 수 있는 한 스스로 움직여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스스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물고기를 나눠주는 자선도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진정한 최고의 자선은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회적 교회라면, 이런 일들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날 모임에 참석한 사회적기업활성화포럼 김지한 기획위원장의 말이다. 그동안 <아름다운동행>에서는 사회적기업을 주제로 특집기사를 정기적으로 써왔다. 그러나 사회적기업의 개념을 넘어, 사회적 교회를 말한다는 것은 또한 새로운 도전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교회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 사도행전적 교회

먼저 유병근 목사가 교회에서 ‘이웃사랑봉사회’를 조직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동네 쓰레기를 줍고, 동네 껌 띠는 일부터 시작했다. 나중에는 양로원과 아동복지센터에도 방문했다. 그런데 그 이후가 쉽지 않았단다.

“매주 목요일만 되면 교회 앞에 노숙인들이 500원을 받으려고 줄을 섭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안 되겠다 싶어, 그들에게 교회 일을 주며 고용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반대가 너무 심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도 문제이지만,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사회적 교회의 모델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적용면에서는 쉽지가 않거든요. 봉사 가서 사람들끼리 사진 찍는 단계까지는 왔는데, 물고기 잡는 단계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이어 김영헌 목사가 말을 이어갔다. 사회적 교회가 곧 사도행전적 교회라는 것이다.
“십자가 확신을 갖게 되면, 야고보적인 믿음으로 열매를 믿게 된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자연스럽게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믿음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교회가 곧 사회적 교회이자, 사도행전적 교회가 아닐까요.”


# 사회=이웃, 이웃=사회

용어 사용에 대한 의견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림택권 전 아세아연합신대 총장은 “‘사회적’ 이라는 용어를 쓸 때 조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회주의 용어라는 생각이 들어, 보수적인 교인들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이에 최성규 목사는 “‘동무’라는 단어도 좋은 뜻인데 북한이 사용하면서 사라졌듯이, ‘사회’라는 말도 마찬가지”라며 “좋은 뜻이니만큼 많이 사용해서 익숙하게 만들자”고 말했다. 박영신 교수도 ‘사회’라는 용어는 우리가 자주 쓰는 ‘이웃’과 같은 뜻으로 해설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교회들이 이웃들에게 더 큰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사회’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공동체이고, 교회의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지요. 100여 년 전 교회가 처음 조선 땅에 들어왔을 때는 사회적 개혁, 복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느 순간에 벽을 높이 쌓고, 스스로 감금되고 말았지만, 교회는 마땅히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웃이 사회입니다. 여기 계신 목사님들이 이런 데 관심을 갖으시면 한국교회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 사회적 교회의 성패는...

임종수 목사는 태안 기름유출사건 때의 일을 공유했다. 예배를 30분 만에 끝내고, 교인들과 함께 달려간 태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고 있었다. 제일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감자탕교회는 텐트까지 치고 봉사중이었다. 그는 “지금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들이 있을 것”이라며 “그들을 찾아내 잘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지한 위원장은 “이미 교회가 많은 복지사업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자선에서 머무르는 복지에 멈춰 있을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회적기업 형태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교회가 헌신된 자원봉사자들을 보유하고 있어 훨씬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교회의 성패는 결국, 믿음을 실천으로 이어가는 교인들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내 이웃을 예수와 같이 섬기는 교인들 말이다.

이범진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