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광부 33인이 밝힌 69일 간의 기적

식량이 떨어지고 산소가 부족해서 죽기 전에, 사람에 의해서 죽을 지도 모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는 와중에 호세 엔리케스가 나섰다. 짤막한 기도였지만, 광부들은 자신을 되돌아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의 등을 씻겨주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농담도 즐겨했던 동료들이 아니었던가.


“우리 주변에도 기적은 항상 일어납니다. 연합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작년 10월 우리에게 ‘기적은 있다’는 사실을 간접 깨닫게 한 칠레 광부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예순 아흐레 날 동안 700m 광산 바닥에 갇혀있었던 광부 33인이 구출되던 날, 전 세계는 그들과 또한, 목숨을 걸고 구조했던 구조대원들에게 환호와 찬사를 보냈다.

 

무사한 생존자들을 보며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기나긴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었는지 궁금해 했다. 전문가들은 광부들이 긴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었던 원인으로 물이 충분했다, 십장(광부들의 감독관)인 루이스 우르수아의 지도력이 탁월했다 등 나름대로의 견해를 제시했다. 하지만 광부들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곳에서 우리는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엔리케스 덕분에 우리는 이성을 잃지 않고 죽음의 공포와 사투를 벌일 수 있었죠.”
광산이 무너질 때 광부들은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로 막힌 곳을 폭파시켜도 소용이 없고 어둠의 시간이 지속되자, 광부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평정심을 잃어버린 광부들은 서로의 탓을 하기 시작했다. 또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질서와 예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어요. 평소 우리와 함께 일하지도 않으면서 사사건건 잔소리만 했던 우르수아, 마약과 도박에 찌들어 일하는데 방해만 됐던 몇몇 사람들이 훼방꾼으로 보이기 시작했죠. 저들에게 내 식량을 나눠줘도 될까 싶기도 했고, 혹시라도 ‘내가 인육이 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 잠시도 곡괭이를 손에서 놓지 못했어요.”

식량이 떨어지고 산소가 부족해서 죽기 전에, 사람에 의해서 죽을 지도 모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는 와중에 호세 엔리케스가 나섰다.
“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한 엔리케스는, 이곳에서 서로에 대해 더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과, 본성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관해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의 기도를 짤막하게 했다.

 

잠시 동안의 기도였지만, 광부들은 자신을 되돌아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의 등을 씻겨주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농담도 즐겨했던 동료들이 아니었던가. 너 나 할 것 없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데나 널려있는 변을 치우고, 서로의 집기를 정리했다. 베테랑 광부인 세풀베다는 장기간 버틸 계획을 세우고, 어부였던 고메스는 소싯적 이야기를 재미있게 늘어놓으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페냐는 자동차 배터리를 이용해 밝은 빛이 끊이지 않게 했다. 33인 모두가 각자의 특기를 살려 이 난관을 돌파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마음이 불안해질 때면 광부들은 엔리케스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며 자신들도 손을 모아 예수님을 불렀다. 그들에게 예수는 서른네 번째의 동료이자, 자신들을 살려줄 구원자였다.

그렇게 69일을 버티어 낸 그들은 유명인사가 되어 각종 행사에 단골손님으로 초대받고 그들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그들은 예배드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믿지 않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마약과 도박에 손대지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고 가난한 동료와 이웃들에게 작은 정성이나마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예수님이 주신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며 기쁨을 느끼는 광부들이 고백하는 최상의 표현이었다.  
   
사진제공= 월드김영사
편성희 기자
 
<The 33>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월드김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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