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광저우에서 열린 남자 유도 73kg이하 결승전에서 우리나라의 간판스타 왕기춘 선수가 일본 선수에게 패하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나도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왜 저렇게 답답할 정도로 단조롭게 공격을 하는 거지?’ 왕 선수는 손과 발을 다양하게 쓰지 않고 주로 업어치기기술 위주로 공격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장 종료 23초 전 상대로부터 역습을 당해 금메달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 순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금메달을 눈앞에 두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났다. ‘당연히 금메달을 딸 줄 알았는데 도대체 왜 저렇게 무기력한 거야. 이제 운동 할 만큼 해서 정신력이 해이해진 거 아니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난 소식을 보고 나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왕기춘 선수는 상대방이 왼쪽 다리 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기술보다는 주로 업어치기기술 위주로 경기를 하다가 패하고 말았다.


경기를 마치고 상대인 일본의 아키모토 선수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왕기춘은 나의 부상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에 대해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한편 왕기춘은 “아키모토가 다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공략하고 싶지는 않았다. 발목을 공격하지 않은 것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 승부에서 패한 것은 받아들인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너무도 담백하고 멋진 모습이다. 주변에서 페어플레이에 대한 칭찬을 해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일절 생색내는 모습이 없었다. 경기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자세가 너무 부끄러웠다. 게임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특히 일본 선수에게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으로 왕 선수의 경기를 바라본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동시에 내가 나의 인생도 그런 시각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엄습해왔다. 경쟁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압박 속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승패의 구도에서 보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상대가 어떤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마구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도 DID(들이대) 정신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칫 상대방의 상처와 아픔도 외면하고 나의 목표만을 추구하게 만들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스려야 함을 절감하는 기회였다. “왕기춘 선수, 아무것도 모르고 원망해서 미안해요. 당신은 진정한 우리의 간판스타입니다. 왕기춘 선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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