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한 독실한 무슬림 청년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청년은 이슬람에서 성인으로 추앙하는 무함마드처럼 되고 싶어서 어려서부터 꾸란과 하디스를 즐겨 읽고, 심지어는 옷차림도 무함마드 시대의 의복을 즐겨 입곤 했습니다.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 들어가서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하였고, 이집트를 이슬람 종교법인 샤리아법으로 다스리는 신정국가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고, 테러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이슬람은 자신의 삶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 할 진리이자 가치였지요.

그런 그가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청년은 대학에서 이슬람에 대해 공부할수록 역사적, 언어적,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친척들, 모스크에서는 이맘에게 ‘이슬람은 오류가 없는 마지막 메시지’라고 듣고, 그것을 믿었던 청년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곧 청년은 실컷 돼지고기를 먹고, 꾸란을 찢어버립니다. 육체와 정신 모든 것이 피폐해진 청년은 결국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때 청년을 붙잡은 사람이 한 선교사였습니다. 청년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기독교 선교사에게 “신은 없다”고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는 성경을 꺼내 청년에게 한 말씀을 보여줬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청년은 당황했습니다. 꾸란은 이슬람을 변증하지 못했지만, 성경은 기독교를 변증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이맘들은 기독교가 변질되었고, 왜곡됐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슬람에 오류가 있으니, 혹시 기독교가 진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청년은 자신의 조국을 떠나 머나 먼 아시아의 타국에서 살아갑니다. 또 자기처럼 듣기만 해서 진리 아닌 것을 진리로 믿어온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오늘 여기까지 오게 한 진리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유난히 초라해진 오늘의 우리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그가 말한 진리, 곧 ‘우리’의 참모습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번 호 <아름다운동행>은 또 유난히 그런 글들이 가득합니다.

반둥의 쓰레기더미를 헤집는 가난한 이국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동분서주하는 선교사님의 이야기와, 죽음을 앞두고 묵묵히 인생을 감사하며 그 길을 의연히 가시는 노 목사님의 노래와, 낮은 곳으로 소금처럼 녹아드는 한 노래꾼의 삶과, 시각장애인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영화를 만드는 한 감독의 삶이 무르익은 늦가을의 노래처럼 촉촉이 가슴을 적십니다.

‘그 진리’ 때문에 삶이 더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여전히 ‘그 진리’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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