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선순위 
성경 잠언 22:1~2, 8~9
찬송 94장(통 102장)


삶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학생은 반드시 공부를 우선시해야 하고, 군인은 반드시 국방을 우선시해야 하고, 법관은 반드시 공정한 재판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자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기복적인 기도를 통하여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신자의 우선순위입니까? 아니면 비록 가난에 처할지라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오늘 현대인들의 관심은 물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찮은 새들도 먹이시고 들의 꽃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당장 내 손에 돈이 없으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아이들 교육비도 있어야 하고 사업을 하는 데도 자금이 필요합니다. 우리 손에 조금이라도 돈이 있어야 내 삶의 기본적인 생활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보다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을 택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간관계를 인정받을 때 세상 사업에도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나 부하게 살고 싶지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여유 있게 사는 사람이 있고, 부족하여 쩔쩔매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문 9절에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고 했고, 22절에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란 남을 돕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남을 돕는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은 우리의 이웃을 돌보지 못하고 주변에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적극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며 나의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감사의 생활화    
시편 105:1-4
찬송 23장(통 23장)


감사는 영어로 thank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think, 즉 ‘생각하다’입니다. 생각하면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면 그 사건 속에서 의미를 찾게 되고, 그래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성도들 가운데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사 우리 같은 더러운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축복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장기려 박사는 친구 사무실의 2층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그만 한쪽 아킬레스건이 끊기는 불상사를 당했습니다. 그는 즉시 병원에 입원했고 병상에서 세 가지 감사를 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을 이겨낸 것을 마치 자기가 선하여 된 것으로 생각했던 불경죄를 깨닫게 되어 감사했고, 둘째,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많은 친지와 제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셋째,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을 병상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청준이 쓴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책의 주인공인 안요한 목사는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갑자기 실명하여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삶을 저주하면서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자살 시도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집에서 나와 서울역 지하도에서 얻어먹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서울역 앞 지하도에서 구걸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과 헤어져 살 길이 막막하여 죽으려고 한강을 가고 있었소. 그런데 당신 같은 장님이 구걸하면서라도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살아야 하겠소.”
안요한은 자살하러 가는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삶의 의욕이 생긴 것을 보고 “아, 나도 살 가치가 있구나. 나도 사람을 살렸으니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소경으로 만들었구나”하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로 작정하고 특별히 시각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죽음이 닥쳐와도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는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살 의욕이 생기고 나의 전도로 구원받을 사람이 생긴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신 은혜에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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